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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어느 치매 노인의 일기

이번 달 ‘재미수필문학가협회’에서는 흥미로운 행사를 한다. 각 지역 클래스별로 발표회를 가지는 일이다. 내가 속한 오렌지카운티의 ‘오렌지방’에서는 치매 노모를 모신 가족을 설정하여 각자의 마음을 글로 써 보기로 했다.

어머니는 큰 딸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20년을 희생하셨지만 이제는 오히려 가족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상황이 설정되었다. 본인은 물론 큰딸 부부, 큰아들 부부, 막내딸, 손주들에 이어 옆집 여자까지 등장하여 그들의 심정을 고백한 짧은 수필을 써보는 것이다. 수필로 하는 상황극은 ‘오렌지방’에서 최초로 시도해 보는 것인데, 앞으로 수필의 한 장르가 되어 수필의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나는 노모의 역할을 맡았다. 다행히 내 어머니는 아직도 너무나 총명하시기에, 친구들의 하소연을 소환하며 상상해서 쓴 글을 옮겨본다.

오늘 따라 날씨가 흐리다. 구름사이로 해가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꼭 요즈음 내 정신 같다. 내 나이 벌써 아흔 다섯이다. 옛날 같으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한참 터를 잡았을 나이인데 아직도 이 땅에 버티고 있다. 때로는 ‘하나님 어서 날 데리고 가 주세요’라고 기도하다가도 ‘아니, 아니, 내 새끼들하고 손자 손녀 얼굴 보면서 여기에 더 살래요’한다. 하늘나라로 가면 영원히 보고 싶어도 못 볼 텐데 하는 생각에 눈물도 난다. 그래도 빨리 떠나줘야 할 것 같다. 큰 딸이 너무 고생이다.

요새는 낯선 여자가 점심을 차려줄 때도 있다. 당신이 누구요? 물으면 그 여자는 엄마 딸이잖아 하고 나를 와락 끌어안는다. 내 어깨 위에 얼굴을 걸치고 훌쩍거리기도 한다. 내 딸은 삼단 같은 머리에 볼살이 통통한데 머리가 허옇고 비쩍 마른 여자가 언감생심 내 딸이라고 한다. 정신이 이상한 여자다.

지난주에 온 막내딸은 내 손등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엄마는 언제나 장남, 장남 하더니 큰오빠는 절대로 안 잊어먹더라”했다. 내 정신이 왔다갔다해도 큰 아들은 알아보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치매라고, 말만 들었는데 내게도 그것이 오는가 싶다. 기저귀를 채워주고 목욕을 시켜주던 내 품의 아가들이 이제는 나를 그렇게 해 준다. 옛날에 딸과 같이 본 영화가 생각난다.

벤저민 버튼이라고 했던가? 주인공은 노인으로 태어나서 아기가 되어서 죽던데. 나는 아기로 태어나서 다시 아기가 되었다. 이리저리 살다보니 인생을 한 바퀴 휘익 돌아 제자리로 온 셈이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아기는 방긋방긋 웃기는커녕 자식들 힘들까 봐 가슴에 눈물만 어린다. 내 마지막 소원은 자식들한테 폐 안 끼치고 자는 잠에 가는 거다.

오늘처럼 날씨가 흐린 날은 친정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도 나처럼 이렇게 외로웠을 건데 그때는 몰랐다. 나는 영원히 안 늙을 줄 알았다. 돌아가시기 전에 더 잘해 드렸을 걸 후회도 된다. 내가 와작와작 김치를 씹으면 이빨 좋을 때 많이 먹으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내가 며느리한테 그렇게 말한다. 세월이 언제 이리 흘렀을꼬.


성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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