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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진정한 겸손에 대하여

무릇 모든 인간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예술가는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일러 졸작, 졸시, 졸저 등으로 부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졸작이라는 말은 “보잘것없는 작품”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작품을 졸작이라고 이르는 것은 스스로를 지극히 낮추는 겸손한 마음가짐인 것이죠.

물론 저도 남들이 하는 대로 별 생각 없이 졸작, 졸시 같은 낱말을 쓰며 촐싹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진짜 겸손이라는 낱말의 무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잘것없는 글을 내놓고 겸손한 척 ‘졸작’이라는 말로 눙치는 것은 뻔뻔스러운 죄를 짓는 일이 아닌가, 졸렬하지 않은 작품을 당당하게 내놓는 것이 글쟁이의 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죠.

그런 생각은 제가 스승으로 모시는 극작가 김희창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의 한 구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마음껏 오만해지길 충심으로 바란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술 앞에는 가장 겸손해야 하고, 사람 앞에는 가장 오만해야 합니다. 오만해야 붓을 들 수 있는 것이고, 겸손해야 좋은 예술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이라는 낱말을 사전은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겸손이란 어떤 것일까요? 겸손한 척하는 것 말고, 진정한 겸손이란 무엇일까요?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존심과 겸손은 과연 어떤 관계일까요?

스승님의 말씀은 아주 오래 전에 받은 가르침인데도 아직까지도 그 말씀의 깊은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쓰라는 말씀으로 새기기도 하고, 겸손이란 겉치레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새기기도 할 따름입니다.

아직도 “예술 앞에는 가장 겸손해야 하고, 겸손해야 좋은 예술이 나올 수 있다”는 말씀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머리로는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것 같지만 마음가짐이나 실천에서는 그저 막막하기만 할뿐, 어림도 없네요.

그런 생각으로 책을 읽으니, 밑줄 치며 읽어야 할 문장이 참으로 많더군요.

“신통치 못한 작품을 남겨 신과 인간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죽음을 앞두고 했다고 전해지는 말입니다. 인류 최고의 미술가로 존경 받는 다빈치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겁니다. 아, 이 정도 돼야 진짜 겸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기가 팍 죽었습니다. 물론 신에게 드리는 말이란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9)도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피카소의 유언으로 알려져 있는 문장의 한 구절입니다.

“나는 오늘날 명성뿐만 아니라 부(富)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는 나 스스로를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화가는 조토와 티치아노, 렘브란트와 고야 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 사람들이 지난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낸 한갓 어릿광대일 뿐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화가가 스스로를 ‘한갓 어릿광대일 뿐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굉장한 어릿광대로구나! 무슨 말을 더 덧붙이겠습니까? ‘과연 피카소는 피카소다’라는 말밖에!

죽음을 앞두면 인간은 누구나 진심으로 겸손해지는 것일까요? 신 앞에 서야 비로소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는 걸까요?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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