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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호주머니 이야기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한다. 정말 빨리 흘러갔다.

엊그제 이 땅에 발을 디뎠는데 벌써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이제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미국 나이로, 문득 흘러간 그 날들이 아직도 떠 있는 풍선으로 머리 위를 떠다니고 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땅에 겁 없는 도전장을 던진 새 삶의 시작이었다. 영어는 손발 흔들며 눈치작전으로 앞만 보고 달린 이민 초창기의 꿈, 궁하면 통한다 했던 그 말을 믿고 맨땅에 헤딩해야 한다는 각오뿐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다. 어느 노부부의 배려에 준비금도, 영어도 넉넉지 못한 나에게 비즈니스의 첫걸음마를 시켜 준 이 땅의 첫 만남이었다. 참 좋은 인연이었다. 물들지 않았던 황금의 시대, 옛날은 지금도 마음을 울리는 잊을 수 없는 티 없는 순진한 마음들, 보고 싶어지는 얼굴들이 많다.

여기 미국인의 세탁비 지출은 상상을 초월한 세탁 문화로 80% 이상 이곳 국민은 한 번 입은 옷은 다시 입지 않고 세탁을 하고 철이 바뀌면 깨끗이 손질을 하는 손님도 있고 겨울옷 storage도 한다. 경제불황이 오기 전 이 지역에 여섯 개의 점포를 운영했다. 손님도 각양각색이다. 뒤죽박죽 헝클어진 보따리를 들고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얌전하게 정돈해서 가져오는 손님이 있다. 그리고 재활용 옷걸이는 귀신 머리처럼 엉클어진 채 놓고 가는 막가파도 있는가 하면 아주 가지런히 차곡차곡 잘 정리를 해서 가져오는 예쁜 얌전 파도 있다. 간혹 엉뚱한 손님은 내 옷이 집에 없으니 분명 여기에 있다고 막무가내의 억지도 기가 막힌다. 한데양심 있는 자는 집을 뒤져 찾으면 미안하다고 알려 온다.



경제가 한창 잘 나가던 좋았던 시절의 카운터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세탁 전 필수의 첫 관문은 호주머니 검사다. 목적은 볼펜과 크레온, 립스틱 색출이다. 혹시 부실한 검사에 이 세놈 중 하나라도 놓쳐 기계에 들어가는 날이면 홍역을 치른다. 검은색 옷을 빨 때는 그래도 큰일은 피해 갈 수가 있지만, 흰옷의 경우는 대란이다. 전량을 모두 특수 케미컬로 묻어 있는 부분을 제거하고 다시 클리닝을 두세 번 같은 방법으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정말 제일 골 아픈 문제이며, 또한 오래된 오리털 베개나 이불이 기계 안에서 터지는 사고는 큰 골칫거리로 기계 속은 엉망으로 특수 배큠으로 처리해야 하고 가게 안은 온통 오리털로 한번 상상해보면, 카운터의 임무는 아주 중요한 관문으로 물 샘 틈 없는 철통 같은 검문소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희비의 사건도 가끔 일어난다. 심심치 않게 현금이 나올 때가 있다. 세월이 좋았을 때의 일이다. 한 번은 3000달러가 발견되어 손님에 돌려주었는데 웬 돈이냐고 반문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부정의 돈, 아니면 주체 못 하는돈부자, 기가 막힐 일도 있다. 찾아준 것보다 더 있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지만, 꽃도 사 오고, 초콜릿, 팁, 와인, 예쁜 글을 쓴 감사의 카드도 보내온다. 언제부터인가 경제 불황으로 정신 무장이 되었는지 호주머니는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서 가지고 온다. 얼마나 고마운지 카운터의 침입자가 사라졌고 돈은 거의 보이지 않는 시대가 왔다.

정답이 무엇일까 아직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깨끗해진 호주머니, 삶의 어려움? 볼펜 없는 호주머니의 고마움이 교차하는 카운터의 숨은 숙제는 아직도 풀지를 못했다.


오광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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