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앤젤라 오] 한인 업주 총에 죽은 흑인소녀만 보도한 주류 언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5화> '한인사회의 대변인' 앤젤라 오 변호사
<3> 주류 매체 통해 사실 알리기

LA폭동 피해자들이 한국에서 보낸 성금 45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LA폭동 피해자들이 한국에서 보낸 성금 45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앤젤라 오 변호사가 방송 출연 후 전국에서 받은 한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격려하는 편지들. [앤젤라 오 변호사 제공]

앤젤라 오 변호사가 방송 출연 후 전국에서 받은 한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격려하는 편지들. [앤젤라 오 변호사 제공]

충격 받은 미국인 격려편지 쇄도
한인 일각 ‘왜 대변인하냐’ 비난


▶테드 코펠 뉴스쇼에 출연

로스펠리츠 근처에 있는 ABC-TV 스튜디오는 주택가 동네만큼 조용했고 일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담당자의 안내로 들어간 스튜디오에는 조명과 카메라, 의자 뿐이었다. 의자에 앉자마자 벽 한쪽에 설치된 스크린이 켜졌다.

잠시 후 사회자의 얼굴이 크게 보였다. 테드 코펠. 당시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ABC-TV 나이트라인 뉴스쇼의 메인 사회자였다. 뉴욕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그는 나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한인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나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오래 흘렀기도 했지만 방영된 방송을 보지 않은 탓도 있다. 하지만 그날 내가 테드 코펠에 말한 메시지는 하나였다. 주류 언론의 잘못된 정보로 한인 커뮤니티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인타운에 약탈과 방화가 진행돼도 LA경찰국(LAPD)이 모든 가용 경찰 병력을 베벌리힐스와 웨스트 LA 등 백인 지역에 배치해 출동하지 않고 있으며, 주지사의 명령을 받은 주방위군 역시 한인타운 외곽만 지키고 있어 실제 한인 상인들을 폭도들로부터 구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민 1세 한인 스몰 비즈니스 업주들의 어려움에 대한 내용도 알렸다. 주류 언론들은 오렌지 주스를 들고 있는 15살 흑인 소녀가 한인 리커스토어 업주에게 총을 맞고 죽었다는 내용만 끊임없이 반복해 보도했을 뿐, 정작 그 리커스토어 업주가 지역 갱단들로부터 얼마나 위협을 당해 왔는지, 강도와 절도로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등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사망한 흑인 소녀가 업주를 폭행해 업주 역시 다쳤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 이 모든건 백인과 흑인과의 갈등으로 생겨난 폭동이라고 말했다.

주류 방송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방송을 들은 미국인들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변호사 사무실로 편지와 카드가 쏟아졌다. 일부는 한인 커뮤니티를 후원하고 싶다며 수표를 보내오기도 했다.

지금도 내 사무실을 담당했던 비서에게 감사하다. 그녀는 쏟아지는 카드와 편지를 정리해 내 책상에 두고 수표 등은 “관심을 보여줘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정중하게 쓴 편지와 함께 돌려보내는 일을 상당히 오랫동안 해야 했다.

▶쏟아지는 미국인들의 격려

파장이 이렇게까지 클 줄 몰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알아봤고 방송국마다, 언론사마다 나를 찾아다니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로펌에 제대로 출근하지 못할 정도였다.

사실 폭동 후 사무실은 거의 출근하지 못했다. 피해를 본 업주들을 만나고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녀야 했다.

한인변호사협회(KABA)는 피해자 지원에 가장 먼저 앞장섰다. KABA는 한미연합회(KAC)와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의 전신인 한인청소년회관(KAC) 사무실에서 매일 늦게까지 피해자들을 만나 보험 신청이나 리스계약 등 법적인 문제를 도와줬다.

하지만 방송 출연 후 더 바빠지자 괜히 나갔다는 후회가 들었다. 무엇보다 나에 대한 외부의 공격이 심해져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방송 출연은 KABA 회장이던 존 임 변호사의 설득 때문이다. 나이트라인의 부 프로듀서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인 여기자가 방송에 나와 한인사회를 대변해달라는 전화를 받은 임 변호사는 자신보다는 내가 직접 출연해 미국인들에게 한인타운에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사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재판 때문에 법원을 늘 드나드는 내가 자신보다 말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한인사회의 공격을 받다

나이트라인 뉴스쇼에 출연한 후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출연하게 됐다. 이 쇼는 방청객들이 있어서인지 내 얘기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고 좋지 않게 보는 눈길도 느꼈다. LA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주류 신문들도 내 인터뷰를 잇달아 실었다.

하지만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왜 나서느냐”는 눈길을 보냈다.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도 타운에 슬금슬금 퍼졌다. “돈을 벌기 위해서 방송 출연을 한다더라”는 말부터 “한국어도 모르면서 한인사회를 왜 아는 척하느냐” “한인 커뮤니티 대변인도 아니면서 왜 인터뷰를 하느냐”는 등 소문과 반발이 쏟아졌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며 우려했다. 급기야 부모님도 “좋은 말 듣지도 못할 일을 왜 나서서 하느냐”고 속상해했다.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일하는 데 회의가 밀려왔다.

◇그때 그 사건

LA 폭동이 일어난 후 한인 커뮤니티에 지원금이 쏟아지면서 이로 인한 갈등도 생겨났다. LA타임스가 1992년 7월 31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한인타운에 몰린 후원금은 약 660만 달러. 이중 한국에서 보낸 지원금은 450만 달러. 폭동 소식을 듣고 한국인들과 한국 기업가들이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모아 LA총영사관을 통해 전달했다. 나머지는 남가주 한인들과 주류 구호재단에서 후원한 돈이다. 물가를 기준으로 현재 화폐의 가치로 따진다면 무려 10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이다.

하지만 지급 액수와 지급 방식 등을 놓고 한인 폭동 피해자들과 LA총영사관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결국 LA카운티수피리어 법원이 나서서 돈 지급 방식과 액수를 중재했다. 법원에서 공개한 합의문에 따르면 전체 지원금 중 560만 달러는 당시 폭동으로 피해를 본 업주 2400여 명에게 1인당 2300달러씩 나눠주도록 했다. 나머지 100만 달러는 한인 커뮤니티를 위한 기금으로 마련했다. 당시 이 기금으로 만들어진 게 폭동 피해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4·29장학재단(현 한미동포장학재단)이다.


장연화 기자 chang.nicole@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