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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샤갈의 봄에 내리는 눈

매년 이맘 때면 어머니는 텃밭 준비에 분주하시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땅을 파고 봄맞이 준비를 하신다. 부러진 나무가지 주워 들고 여기는 상추, 쑥갓, 꽈리고추, 시금치. 저기는 아욱, 봄배추, 열무. 저어기는 호박, 오이 하시며 마음의 화폭에 갖가지 봄나물을 그리신다. 순간 쭈글쭈글 금이 간 어머니 얼굴은 낭군을 기다리는 처녀 마냥 홍조를 띄며 화색이 돈다. 대지주의 아내로 당당하게 살던 어머니는 내가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머슴들과 함께 논밭을 갈고 소를 모는 농부가 됐다. 어머니 손목은 무리한 호미질로 오른쪽으로 휘어졌다. 땅은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울 소출의 원천이고 희망이였다.

이른 봄 아직도 눈이 희끗희끗 섞인 땅을 파고 쓰다듬으며 어머니는 말하신다. "땅은 뿌린대로 거둔다. 공 들인 만큼 얻는다. 사람은 거짓말 해도 땅은 속이지 않는다." 근데 이런 일이! 땅에 대한 어머니 믿음에 재 뿌리고 투자한 비용의 반도 못 건지는 일이 발생했으니… 채소밭을 망가뜨리는 웬수들, 토실토실 예쁜 토끼 가족의 등장이다. 아이들 키 만할 때 심은 나무들이 우람차게 자라 숲이 깊어지더니 사슴도 가끔 보이고 두더지, 토끼, 다람쥐, 고슴도치, 너구리 등이 출몰해 동물 소왕국이 됐다.

어머니 채소밭에서 제일 먼저 연초록의 목을 내미는 것은 상추다. 어머니 상추밭은 토끼 밥상, 하룻밤 사이에 제일 먼저 올라 온 여린 잎들을 야금야금 뿌리만 남기고 홀랑 먹어치운다. 어머니는 허름한 셔츠로 허수아비도 세우고 약도 뿌렸지만 무효! 보다 못한 봉씨 아저씨가 철사망 담장까지 만들었지만 토끼들은 땅 파고 잠입해서 훔쳐 먹는다. 토끼와 전쟁에서 승리자는 단연 토끼! 패배한 어머니 한탄이 더 우습다. "먹고 살라고 기들어 오는 놈들을 무슨 수로 막노? 막는 게 잘못이여. 같이 묵고 살아야제"라시며 혀를 끌끌 차신다. 아이들은 "토끼 먹여 살리려 채소밭 가꾸는 할머니 최고!"라며 맞장구친다. 평화는 이렿게 오는 걸까. 맘 먹기 따라 전쟁과 평화가 뒷마당에서 공존하는 것을.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이/ 바르르 떤다./ (중략)/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 만한 겨울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순수한 생명감을 이토록 감각적이고 회화적이며 낭만적인 시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샤갈 그림의 이색적이고 독특한 환상적인 분위기가 고유한 한국의 정서와 맞물려 이질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머니의 봄은 늙지 않는다. 영원토록 꽃 피고 새 우는 청춘의 봄날이다. 봄은 세월이 흘러도 그 때 그 시간에 온다. 염원하던 희망이 생명의 신음소리 낸다.

봄 햇살이 사립문 지나 비스듬히 부뚜막을 비추면 어머니는 커다란 가마솥에 김이 풀풀 나는 물을 끓여 양지 바른 창살문 아래서 겨울 동안 묵은 때를 벗겨 주셨다. 탁탁 소리 내며 타는 장작소리와 솔방울 냄새에 젖어 내 뺨은 복숭아처럼 붉게 물들었다. 겨울이 길고 모질었다고 슬퍼하지 않겠다. 마음의 아궁이에 장작불 지피고 가슴 깊이 불길이 따스해지면 샤갈의 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봄의 시를 낭송하리라. 어머니 비석에 덮힌 눈은 맨 손으로 쓸어 내리리라. 흔들리는 계절에 눈물 보이지 않고 환상적이고 찬란한 봄을 맞으리.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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