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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대기오염에 스러져 가는 아이들

지난해 12월 영국 법원은 아홉 살 나이로 죽은 엘라가 대기오염 탓에 사망했음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런던 남동부의 도로변에서 살았던 엘라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을 초과한 이산화질소와 미세먼지에 노출됐으며, 이로 인해 2010년 천식 발작을 시작한 뒤 30차례 넘게 병원에 실려 가는 고통을 겪다가 2013년 2월 사망했다는 것이다. 대기오염을 엘라의 사망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었던 데는 7년 동안 끈질기게 매달린 엄마의 노력이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엘라의 엄마를 ‘영웅’이라고 칭송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기오염으로 어린이들이 입는 피해도 심각하다. 태어나기 전에도, 태어난 후에도 오염에 노출된 어린이는 고통을 겪는다.

지난 1월 국제학술지 ‘랜싯 플래니터리 헬스’에 게재된 한 연구 보고서는 매년 인도·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임신 손실, 즉 유산·사산 가운데 34만9000여 건이 대기오염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초미세먼지 농도를 WHO 기준인 ㎥당 10㎍(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 이하로 유지했다면, 임신 손실을 29%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태어난 후에도 대기오염의 공격은 계속된다. 지난해 10월 미국 보건영향연구소(HEI)는 ‘세계 대기 현황 2020’ 보고서를 통해 “2019년 한 해 전 세계에서 생후 1개월 미만 신생아 47만6000명이 대기오염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주장했다.



사망한 아이들은 대부분 인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숨졌는데, 실내에서 숯, 나무, 가축 배설물 등을 땔감으로 사용해 요리한 탓이었다. 실내 대기오염이 미숙아와 저체중아 출산으로, 신생아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렸을 때 환경오염에 노출되면, 그 고통이 평생 간다는 점이다. USC 연구팀은 최근 ‘환경보건’ 국제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어린이가 자동차 배기가스의 질소산화물에 노출된 경우 성인이 될 때까지 경동맥 내막 두께(CIMT)가 더 빨리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CIMT는 무증상 죽상 동맥 경화증의 지표, 즉 대기오염 노출과 심혈관 질환 발생을 연결짓는 지표로 사용된다.

연구팀이 70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10~11세 때와 21~22세 때의 CIMT를 측정한 결과, 아동기에 대기 오염물질이 많이 노출된 경우 노출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성인이 될 때까지 CIMT 수치가 연평균 0.3㎛(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씩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생애 동안 CIMT 수치가 조금씩 더 커지면 장기적으로 심혈관 질환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미국 듀크대학과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미 의사협회 저널- 네트워크 오픈’에 게재한 논문에서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질소산화물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18세에 성인이 될 때 정신 질환의 징후를 보일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1994~1995년 영국에서 태어난 2000명의 쌍둥이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10세 당시의 대기 오염물질 노출 수준과 18세 때의 정신질환(알코올·대마초 의존성,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과의 관련성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청소년기까지 신경이 발달하고, 이후 젊은 성인기까지 신경이 성숙하는데, 이 무렵에 대기오염에 노출되면 악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엘라의 엄마 로자먼드 아두-키시-데브라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정보가 부족해 엘라가 대기오염에 대한 노출되는 것을 막지 못했고, 목숨을 구하지도 못했다”며 마음 아파했다. 지난해 한국의 초미세먼지 오염도는 많이 나아졌지만, 전국의 연 평균치가 19㎍/㎥로 WHO 기준의 두 배 수준이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려면 대기오염을 더 개선해야 한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강찬수 / 한국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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