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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 구슬 서 말

미주 한인에겐 이상한 습성이 있다.

주류 사회 동화를 외치면서 주류 사회에 대해 알려고 하진 않는다. 이민 생활이 십수 년이 되지만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그다지 큰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 양쪽 나라의 관습 중에서 자기가 편한 것만 골라서 따르면서 본인이 우물 안 개구리를 자처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오히려 한국발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목소리가 없는 이상한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미 전역에 수십 개 매장을 가진 거대 체인이라고 해도 매장마다 물품을 똑같이 구비하지는 않는다. 각 매장 위치한 지역에 따라 선호 물품이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구매층과 그들의 선호도 파악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정보다. 4차 산업 시대의 정보는 경쟁력의 기반이다.

10년마다 시행하는 센서스가 정책 수립의 근거가 되는 이유는 주민 동향 파악이다. 나이, 성별, 인종, 수입, 교육 수준 등 다양한 방면에서 통계가 나온다는 편리한 시스템은 데이터를 이용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주민을 위한 것이 되기도 하고 주민을 이리저리 휘두르기 원하는 특정 집단을 위한 것이 되기도 한다. 인간사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 경계는 모호하다.

주민 투표를 통해 당락이 결정되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정보는 유권자가 누구냐는 단순한 질문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유권자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이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지 않으면 발에 걸리적거리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메릴랜드의 한인 밀집 지역으로 유명한 하워드 카운티에서 3년 전 지방 선거 시 직접 투표장에 나가 권리를 행사한 한인은 2%다.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는 수치다. 이런 위치다 보니 오팔 존스 카운티의원 보좌관의 ‘보스맨’ 언행이 문제가 됐을 때도 공식 사과 한마디 받아내지 못한다.

한인과 중국인 등 아시안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는 한 주민의 차별적 발언도 모자라, 공직자의 스태프가 그 발언을 지지하는 제스처를 했는데도, 한인과 중국인 커뮤니티의 항의는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묻혀버리고 있다. 한인 인구가 카운티 인구의 14%임에도, 투표자는 2%밖에 안 되는 한인 밀집 지역의 현주소다. 생업에 바빠 정신없는데 대선도 아닌 지방 선거까지 어떻게 일일이 관심을 기울이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사정이 그렇다면 그냥 흩어진 구슬로 사는 수밖에.

2018년 한국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커다란 인기를 얻었었다. 주인공 유진 초이는 목숨을 저당 잡힌 노비의 자식이라는 신분 때문에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도주한다. 군대에 자원하면서 시민권을 얻은 후 임무 수행을 위해 격동의 대한제국으로 돌아온다. 극 중에서 그는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영원한 이방인의 정체성을 끌어안은 채 개인의 안녕과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조국에 대한 헌신 사이에서 고뇌한다. 대한제국사는 치욕과 고통, 아픔과 상실로 점철돼 있지만, 적어도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대의와 일본과 매국노라는 공공의 적은 뚜렷하게 구분된다.

2021년 미국에 사는 수백만 명의 한인이 ‘영원한 이방인’의 굴레에서 벗어났는지 묻는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미국인으로도 한국인으로도, 혹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삶의 의미를 쥐고 흔드는 것이 인종차별인지, 나만 살만하면 된다는 편협한 이기주의인지,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안일함과 무지인지 고찰하지 않음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메릴랜드=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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