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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주유소 청년

60마일쯤 떨어진 곳에 사는 친지를 방문하면서 조그만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계산대에 ‘현금만 받습니다’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미리 들고 있던 카드는 탁자 위에 내려놓고 지갑 속 깊숙이 있던 비상금까지 다 뒤져서 현금으로 지불했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니 반가워서 서로 이런저런 얘기 보따리를 한참 풀어놓았다. 집에 돌아 갈 시간이 지난 걸 보고 서둘러서 나왔다.

한참을 운전해야 하는데 개스는 넉넉한가 들여다봤다. 왜, 올 때 진작에 안 봤을까? ‘그냥 가자. 어쩌면 간신히 갈 수도 있을 거다.’ 낯선 곳이고 또한 한적한 시간에 주유소에 들르는 게 내키지 않았다. 요즘에 자주 일어나는 아시안 증오범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상등을 켜고 서행하며 오는데도 바깥이 점점 어두어지니 걱정이 됐다. 개스가 부족하다는 사인이 벌써 뜬다. 가까운 주유소로 갔다.



아뿔사! 아까 그 음식점에 카드를 놔두고 온 것이 기억났다. ‘어떻게 하나?’하고 한참을 궁리하다 계면쩍은 얼굴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다행히 내 차림새가 평소처럼 후줄근하지는 않았다.

계산대에 앉아있는 청년에게 어렵사리 사정을 말했다. 자신도 언젠가 길에서 차가 고장이 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흔쾌히 들어주고는 걱정하지 말라했다.

반 갤런만 부탁했는데 세 갤런 가량을 자신의 카드로 결제하고 일부러 오지 않아도 되니 언제라도 지나 갈 일이 있으면 그때 갖고 오란다.

가방 속에 남은 귤 몇 개를 방역창 너머로 건네니 되레 ‘고맙다’며 우리처럼 겸손히 두손으로 받는다.

다음날 다시 갔을 때 알았다. 땅딸한 아시안 아줌마에게 친절했던 그는 백인 청년이었다.

희망을 봤다. 이 세상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을 거라는 개스를 가득 채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분이 참으로 상쾌했다.


켈리 조 /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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