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In] 귀신을 만드는 사람들
귀신이 보인다. 연방의회에 나타났다고 했다. 그 증거라는 사진이 페이스북에 나돌았다. 언뜻 보면 오싹하다.로이터 통신 기자가 찍은 사진은 지난달 28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 장면이다. 대통령 등 뒤에서 대통령의 시선이 향한 앞쪽을 찍었다. 좌석에 앉은 의원들맨 뒤 출입문 바로 앞에 이상한 검은색 물체가 서있다. 마치 검은 망사를 쓰고 검은 치마를 입은 귀신처럼 보인다. 키도 족히 6피트는 넘어 보인다.
이 사진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는 자칭 전문가(?)들의 분석까지 뒤따르자 ‘귀신’은 폭풍 공유되기 시작했다. 댓글도 폭주했다. 상당수 글들은 현 정부를 못마땅해 여기는 이들이 썼다. ‘바이든 정부 의회를 악마들이 점령하고 있는 증거’, ‘악마의 딸이 바이든을 지지하려 출현했다’는 괴담까지 나왔다.
이쯤 되니 주류 언론들이 사실 확인에 나섰다. USA투데이, 로이터, AP 등이 귀신의 정체를 취재했다. 알고 보니 귀신이라던 물체는 방송용 카메라였다. 대통령의 정면 샷을 찍는 CSPAN의 카메라였는데 최대한 주의를 끌지 않으려고 검은 천을 카메라 위에 씌운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귀신이 아니라는 증거로 2018년과 지난해 트럼프 의회연설 당시 비슷한 구도에 찍힌 방송카메라 사진을 공개했다.
귀신 소동의 백미는 그 다음부터다. 악마가 없었다는데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또 거대 언론들이 진실을 덮으려 한다’는 음모론이 귀신처럼 떠돌았다.
진짜뉴스보다 차라리 가짜뉴스를 믿겠다는 불신의 근거는 학습 효과다. 언론들이 때로 사실만 짜깁기해도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귀신 소동이 벌어진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 관련 기사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연설엔 일자리·교육·복지에 이르는 약 4조 달러 규모의 초대형 투자 계획이 담겼다. 그래서 ‘미국이 다시 일어선다’는 기사 제목들이 다수였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의도일터다. 그런데 이 연설의 반향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이날 연설을 2690만명이 지켜봤다고 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의회 연설을 지켜본 4770만명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려했으나 국민의 관심도는 떨어졌다는 뜻이다.
이날 의회 연설은 취임 100일에 맞춰 바로 전날 이뤄졌다. 언론들은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비교하는 기사들을 실었다. 그중 한 언론은 취임 100일간 공식 발언 중에서 사실이 아닌 말들을 분석했더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려 7배나 많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숱한 명언(?)들을 남겼다. 코로나19 치료 일환으로 살균제를 인체에 주사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해 뭇매를 맞았고, 재선 승리를 도둑맞았다면서 지지자들의 의사당 행진을 부추겼다.
그런데 ‘7배나 많다’는 말에 감춰진 진실이 있다. 바이든도 사실이 아닌 발언을 67차례나 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바이든 대통령은 “내가 취임한 1월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성인들을 접종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백신 매입 계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발언은 거짓이다. 트럼프 재직 당시 정부는 이미 10억 도스 분량의 백신 접종 계약을 체결했다. 거짓을 말한 사람에게 손가락이 향하면서 또 다른 거짓말은 가려진 셈이다.
사실을 사실로 가린 왜곡 보도에 대한 반발이 가짜뉴스의 생산 동력이다. 의사당의 귀신도 차라리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이들이 만든 가짜다. 귀신이 실제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날 그 자리에 반드시 귀신이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보기 싫은 대통령을 귀신과 묶어 욕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귀신을 만드는 데 귀신인 사람들이다. 귀신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정구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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