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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건널목에 선 어머니

건널목에서 차를 세웠다.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밀고 다른 한 손은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려는 젊은 엄마가 서있다. 부모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지 않은 여인의 모습에서 아이를 기르던 시절의 서툴렀던 나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부모 마음이 어떠했는지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잘 해주지 못한 것만 기억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나를 낳아 놓고 엄마는 시래기죽을 달게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 어릴 때 몸이 조금이라도 아플라치면 그 시래기죽을 탓했다.

우리 부모는 나를 낳아 놓고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자식을 곁에 두고 소소한 작은 일들을 함께 나누며 살고 싶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꿈을 펼치며 큰일을 하기 바랐는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부모란 일평생 자식을 등에 지고 간다는 것이다.

스무 살 무렵, 홀로 걸어가는 엄마를 차창 밖으로 본 일이 있다. 거리엔 눈발이 날렸다. 양손에 무엇인지 모를 커다란 짐 보따리를 들고 사거리 건널목에서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길을 건너려고 차도로 내려섰다. 횡단보도를 중간쯤 건너갔을 때 빨간불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닿지도 않을 손을 허공에 대고 빨리 건너라고 손짓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처진 어깨가 애처로웠다. 그 무거웠을 짐 보따리는 남편 잃고 자식들 데리고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 삶의 무게였을 터였다.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자식노릇을 잘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철없는 젊은 나이였다. 엄마가 어려울 때 힘이 되지 못했고 외로움을 헤아리지도 못했다.

내 갈 길이 더 급했다. 혼자인 엄마 곁을 떠났다. 거대해 보였던 엄마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젊었던 엄마가 늙고 외롭게 남겨질 날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엄마는 젊지도 거대하지도 않고, 나이 들어 약하다. 지나온 세월 동안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엄마는 나를 믿고 의지하려 할 것이다. 점점 힘이 빠지고, 정신이 흐릿해지고, 섭섭한 일이 더 많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도 부모가 자식 키울 때의 마음을 잊고 자식은 자기 사느라, 또 자기 자식 돌보느라 엄마의 그런 심정을 몰라 줄 것이다.

건널목에 선 젊은 엄마와 찬바람 부는 어느 겨울 건널목에서 주춤거리던 엄마의 모습이 겹쳐진다. 깜박이던 빨간불에도 어찌할 수 없었던 암담했던 시절의 엄마와 그런 모습을 차창으로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던 나의 마음이 오랜 기억 속에서 튀어 나온다.

건널목에 사람들이 서있다. 저마다 가던 길에서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조절한다. 건널목에 선 젊은 엄마도 많은 길을 갔다가 되돌아오는 시행착오를 겪었을 성싶다. 멈췄다 또 달리면서 아이는 어른이 되고 젊은 엄마도 나이 들어 갈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아이는 엄마가 더 이상 거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아이가 되어간다.


박연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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