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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이민의 꿈이 불타던 그날

‘한국인 이민이 일구어 놓은 코리아 타운이/ 땀과 눈물과 희망과 약속이 짓밟혔다/ (…)고국은 너무 멀었고 총알은 매일 귀 끝을 스쳤다/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울부짖는 동족의 외침/ 핏발 선 두 눈을 가리는 억울한 눈물로도/ 지붕 위에 올라선 기관단총의 방패로도 무법의 높은 파도는 막아내기 힘들었다.’ 마종기 시 전집 ‘패터슨 시의 몰락’ 중에서.

이 시는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있었던 4·29폭동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시다. 사실에 집중한 과장 없는 언어로 이민자의 아픔과 애환을 표현한 이 시는 코리아타운이 절망과 치욕으로 불타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 동족의 처절한 아픔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시는 미국 역사에 남은 중요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자유를 찾아 고국을 떠나왔지만 어긋난 자유와 평등에 환멸을 느끼는 심정을 표출하고 있다.

어제는 생전 써 본 적 없는 캡을 머리에 쓰고 밖에 나갔다. 거기에다 선글라스와 마스크까지 착용했으니 완전 변장이라고 할만 했다. 아시안이라는 걸 감추기 위해서였다. 며칠 전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아시안 여성이 갑자기 나타난 남자로부터 얻어맞아 광대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사실은 요즘 아시안만 보면 무조건 욕설을 퍼붓고 발로 차고 총격까지도 가하는 인종혐오 범죄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현상은 남자, 여자, 노인, 젊은이 가리지 않고 미국 대도시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유는 바로 중국에서 건너온 코로나19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전염병이 세계를 패닉에 빠뜨렸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이 피폐해진 까닭으로 그 불똥이 코리안에게도 튄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인종 차별적 혐오범죄를 중단하라고 LA 곳곳에 ‘아시안 혐오범죄를 중단하라(Stop Asian Hate)’는 빌보드 광고판까지 내걸고 캠페인에 나섰지만 전혀 수그러들 기세가 없다.

지금 미국에선 이 시대에 통용될 수 없는 일이 그때도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세상의 거대한 회오리 앞에서 소수민족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이런 시점에서 이민자인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 과연 이런 시대의 우리 자녀들에게 미래는 있는 것일까. 4·29폭동 29주년을 맞으며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져보는 아침이다.


정국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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