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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모곡

어머니를 잃고 나서야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너그러웠나를
가슴깊이 깨닫게 된다

어머니와 창경궁에 놀러 가 찍은 흑백사진을 발견했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젊었고 나는 뭐가 즐거운지 짧게 깎은 머리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나는 어머니에게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쉽지가 않았다. 가까이 있다면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마음대로 잘 안되었다. ‘어머니 돌아가시면 얼마나 울까’ 싶다가도 우리 어머니는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에 그 생각은 까맣게 잊고 살았다. 이제부터는 멀리서나마 어머니께 효도를 해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막상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지난 6월 중순 남양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어머니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당일로 서울에 나가 임종을 볼 수 있었다. 도착해 돌아가기 전까지의 5일간 어머니와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찬송과 기도를 동생들과 같이 어머니를 위하여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통일 되면 고향인 개성에 가보고 싶었는데…” 하시며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유언은 “형제간의 우애 있게 서로 사랑하라”였다.

어머니 가신 지 3개월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그 흔한 말,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어머니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어머니의 모든 것이 애절하게 그립다는 말이 실감 난다. 함께 보낸 세월, 따뜻한 밥상, 어머니의 음성, 손길 등 모든 기억이 내 안에 녹아 있다. 어머니를 잃고 나서야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너그러웠나를 가슴 깊이 깨닫게 된다. 특히 장남에 대한 유별난 사랑은 다른 동생에게도 민망할 정도였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일곱살 연상인 같은 동네의 아버지께 시집와서 70여 년, 우리 5남매를 키웠다. 해방 후 사지(死地)를 넘어 월남(越南)하고 6·25전쟁과 1·4후퇴로 인한 피란과 그 피란살이로 고생도 많이 하셨다. 큰 돈은 못 벌었지만 자식들 몸 건강히 공부 잘하여 그들의 원하는 삶을 누리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내가 어머니와 같은 집에서 산 것은 유학 오기 전 25년간의 짧은 기간이었다. 이곳 미국에서 일 년에 한 번, 학생 시절 때는 몇 년 만에 한 번씩 귀국하여 찾아뵙는 손님과 같은 일생의 연속 아니었던가. 장남인 내가 어머니를 모시려고 미국에서 영주하자고 권해 보았으나 한국이 좋다고 몇 차례 방문하였다가는 귀국하였다.

일찍 남편을 잃고 30여 년 홀로 지내였으니 그 외로움과 쓸쓸함은 누가 알았을까. 요양병원으로 가기 전까지 독거노인의 생활은 얼마나 외롭고 불편하였을까. 서울의 남동생들이 모시겠다고 청했으나 간섭받지 않고 자유로이 살겠다 하여 2년 전 요양병원으로 갈 때까지 혼자 살았다. 25년 전 기독교로 개종하여 권사 직분으로 전도와 선교의 종교생활이 활력소가 되었다. 지금은 천국에서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계실 줄 믿는다. 오늘 나는 생각한다. 여행자처럼 삶을 음미하고 사랑을 누릴 새도 없이 바쁘기만 하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는 사이,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가족은 따뜻한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다. 몸을 데우는 그 향긋한 방에서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는 어머니를 제때 챙겨 드리지 못해 일찍 떠나보내고 말았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잘 해라는 말이 왜 그때는 가슴에 와 닿지 않았을까? 이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이제 소용없는 독백을 하게 된다. 나는 한 번도 좋은 아들인 적이 없다는 것 같다.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야 인생의 만남과 작별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만남과 작별의 끊임없는 이어짐이 인생이란 사실을 나는 요사이 상실감과 슬픔을 화초와 채소 키우기 또 사진 찍기와 골프로 승화시키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가로움과 소일거리를 되찾게 된다.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워하며 벽에 걸려있는 어머니 사진을 보며 나직이 사랑의 인사를 건넨다. ‘어머니, 소망을 이룰게요. 지켜보아 주세요. 사랑해요.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굳센 아들로 살게요.’


김영덕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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