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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미처 몰랐다

봄이 왔다. 주위는 노란빛 보랏빛 하얀빛 분홍빛 가득한 꽃들로 가득하다. 나무들은 가지마다 연두색 빛을 머금었다. 새들도 분주하게 날아다니며 둥지를 튼다. 짝짓기하려고 목청 높여 구애하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정겹다. 치열하게 자손 남기기를 위한 몸부림이겠지만 나의 해석은 언제나 이기적이다.

한쪽으로 난 길목에 커다란 목련 나무가 우뚝 서서 온통 꽃을 피웠다. 꽃이 너무 많아 무거워 보인다. 꽃잎들이 떨어져 길가를 가득 메우고 반쯤은 아주 활짝 피어 달려있다. 바라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난다. 예쁘다는 말도 못하고 휘청거렸다.

오늘은 가운데가 주황색이고 겉은 노란 두 가지 색을 지닌 수선화를 보았다. 튤립도 봉우리를 열고 검은 가슴속을 보여준다. 며칠 동안 구름이 끼고 예상 못 한 빗방울도 뿌렸지만, 오늘은 구름 사이로 따스한 햇볕이 마구 내려왔다. 햇볕을 쬐면 피부를 통해 비타민 D가 만들어진다고 목을 길게 뽑아보았다. 우울증 방비에 좋다고 하지 않던가.

4월의 공기는 아직 차갑다. 아침저녁 찬바람에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입 가리개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 천지인데 기침이라도 하면 금방 차가운 시선을 받을 것이다. 조심스럽다. 지난 한해가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많은 시간을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지냈다. 무뎌진 감각으로 하루를 지내고 나면 심한 독감을 앓고 난 기분이 되었다. 한동안 아무 일도 못 하고 갇혀 있던 지난 시간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기억조차 하기 싫다. 그리고는 봄을 맞이했다.

평소에는 봄이 오면 오나보다 여름이 오면 덥구나 하면서 살았다. 글을 쓴다고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줍기도 했다. 모든 계절은 당연히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난한 것은 이번 봄이다. 뒤뜰에 제멋대로 핀 민들레가 내 가슴을 흔들었다.

깊은 겨울을 떨치고 피어난 봄. 보랏빛으로 핀 작은 꽃들. 꽃잎이 반들거리는 노란색 꽃들. 어디에서 왔을까? 작은 풀밭에도 자세히 보면 각자 다른 모습의 기적 같은 생명이 얼기설기 솟아나 있다. 우리와 같은 처지일 것이다. 보잘것없어 보여도 신의 창조물 중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말이다.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주어진 모든 것들을 사랑하자던 윤동주 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바람에 스치는 모든 꽃잎이 꽃길을 만든다. 이 황홀하고 아름다운 봄의 향연을 왜 몰랐을까? 세상의 모든 일에 마음을 둘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 많은 일에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창문 넘어 지붕 위로 새 한 마리가 앉는다. 노래를 부른다. 기막히게 듣기 좋은 소리를 그냥 들려준다. 고작 자연에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쓰레기 분리수거일뿐인 나에게 말이다. 내생에 주어진 많은 계절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낀다. 가리개를 종일 하다가 집으로 와 창문을 열고 숨을 들이마시면 살 것 같다. 숨 한번 제대로 쉴 수 있어도 만족스럽지 않은가? 그렇듯이 순간마다 찾아오는 행복은 작은 깨달음에서 온다. 날마다 작은 일에 감사함을 느끼고 살아야지. 봄이 이토록 넘치는 기쁨인지 미처 몰랐다. 어리석어서 미처 몰랐다. 창을 여니 봄바람이 불어 나에게 속삭인다. “괜찮아 다 괜찮아.”


고성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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