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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112년 만에 만난 마크 트웨인

쌓인 상자들을 하나씩 꺼내 정리를 했다. 팬데믹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차고 정리를 시작했다. 시어머니의 짐들이 두서없이 차가 두 대 들어갈 공간을 채웠다. 거미줄과 먼지로 덮여 장갑에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하나씩 열었다. 30년도 지난 전기 요금 고지서와 시어머니가 받은 월급 지급서 뭉치가 있다. 당시 근처의 마켓에서 나누어준 우표만 한 스티커와 그것을 붙인 노트도 있다. 노트를 스티커로 가득 채우면 공짜로 상품을 주기에 열심히 모았다고 했다. 남편이 공군 시절 입었던 재킷과 군화가 얼룩지고 찌그러진 상태로 옛날의 영화를 그리워하며 갇혀 있다. 시아버지가 2차 대전에 군인으로 참전하며 받은 훈장도 있었다.

상자는 쥐가 구멍을 내고 들어가 분탕질해 엉망이다. 몇몇 물건을 제외하고는 낡고 삭아서 버렸다. 선반 구석에서 내린 상자는 무거웠는데 열어보니 책이다. 디즈니사 동화책과 한참 지난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들이다. 바닥에 웅크린 손바닥만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누렇게 변한 표지를 읽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다. 표지에 마크 트웨인의 옆 얼굴이 새겨져 있다. 표지를 넘기니 그의 대표작인 ‘톰소여의 모험’의 톰과 허클베리 핀이 낚싯대를 둘러맨 채 걷고, 그가 필명을 짓는데 아이디어를 준 증기선이 연기를 뿜으며 강을 가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첫 장에는 거지와 왕자 복장의 두 소년이 마주 보며 서 있다. 그 뒷장에는 그의 본명인 새뮤얼 클레먼스 그리고 1909년에 인쇄됐다고 쓰였다. 허접한 물건 사이에서 보물을 발견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서재로 갔다. 먼지를 털어내며 본문을 넘기는데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얇았다.



몇 년 전에 마크 트웨인의 고향인 미주리주의 작은 마을인 한니발을 방문해 작품의 원천인 미시시피강을 바라보며 그의 숨결을 느꼈다. 또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 있는 어른들의 레고로 불리는 그의 집에서 소설가이고 발명가며 강연자인 그를 만났다. 그의 집안에는 온실이 있다. 그곳에서 자녀들과 자신의 작품인 ‘왕자와 거지’로 연극을 했는데, 온실은 왕실의 정원이고, 자신은 거지 왕자를 돕는 마일드 핸튼 경 역할을 했단다.

책장에 적당한 자리가 있나 찾다가 다른 책들과 어울리지 않아 책상의 작은 선반 위에 놓았다. 의자에 앉아 간격을 두고 바라보니 흐뭇하다. 새 책에서 나는 잉크 냄새와 달리 쿰쿰한 세월을 품은 향기가 났다. 남편이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요즘 가격으로 90~100달러라는데 내가 느끼는 기쁨은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다.

그는 하얀 정장에 곱슬머리로 범상치 않은 외모처럼 해학과 풍자 안에 가시를 품은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세계를 그려냈다. 내가 평소 존경하는 대문호다. 핼리 혜성이 지나갈 때 태어나서, 혜성이 다시 지나갈 때 세상을 떠날 거라며 자신의 마지막을 예언했던 그의 작품집이 112년 넘어 나에게 왔다. 혜성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데 마치 꿈처럼 내 손에 찾아들었다.

소중한 책이다. 아마 시어머니도 마크 트웨인을 좋아했나 보다. 세월을 넘어 지금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쓴 그의 필력이 부럽다. 생각지도 않은 귀한 물건을 앞에 놓고 행복하다. 이런 날이 종종 나를 찾아온다면 복권 맞은 기분이리라.


이현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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