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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할 얘기가 있다고…영화화 만류 했었죠”

['미나리' 실제 주인공 인터뷰]
‘미나리’ 정이삭 감독 부친 정한길씨

영화 미나리의 실제 모델인 정한길씨가 가족사진. 앞줄 왼쪽부터 정이삭 감독, 정이슬, 뒷줄 왼쪽부터 정한길, 정 감독의 어머니 정선희씨, 이명순 여사.

영화 미나리의 실제 모델인 정한길씨가 가족사진. 앞줄 왼쪽부터 정이삭 감독, 정이슬, 뒷줄 왼쪽부터 정한길, 정 감독의 어머니 정선희씨, 이명순 여사.

정 감독과 뉴욕 여행서 찍은 사진.

정 감독과 뉴욕 여행서 찍은 사진.

정한길씨 젊은 시절.

정한길씨 젊은 시절.

영화에도 나오는 실제 모빌홈 앞에서 정한길씨와 정 감독의 친 할머니.

영화에도 나오는 실제 모빌홈 앞에서 정한길씨와 정 감독의 친 할머니.

외할머니 그리며 각본
소품·배경 90%가 유사
촬영장엔 한번도 못 가
코로나 의료진에 티켓


배우 윤여정 씨에게 93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긴 영화 ‘미나리’는 한인 2세인 정이삭 감독의 가족 이야기가 소재다. 영화 속 남자주인공인 ‘제이콥’의 실제 모델은 정 감독의 아버지인 정한길(75)씨. 본지는 정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나리’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정 감독은 콜로라도주 브라이튼에서 태어났다. 정한길 씨는 지난 2014년에 딸 가족이 있는 콜로라도 주 스프링스로 돌아와 현재는 아칸소 주와 스프링스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본지는 현재 아칸소에 머물고 있는 정 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대한 뒷이야기와 정 감독의 어린 시절, 그리고 현재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 씨는 건국대학교 축산과에 다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단돈 200달러를 들고 1975년에 미국에 왔다. 아내는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다. 영화에서 윤여정씨가 순자로 분했던 장모 이명순 여사는 6·25 전쟁 미망인이다. 동국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남편 고 김현태씨가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나갔다 전사했기 때문이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이 여사는 그 후 딸을 출산해 홀로 키웠다.

인천 앞바다에서 억척스럽게 조개를 캐며 딸을 키웠던 이 여사는 그 귀한 딸이 낳은 아이들, 특히 어린 손자 정이삭 감독을 애지중지했다. 그런 외할머니에게 애틋했던 정 감독은 몇 년 전 1년 간 유타대학교 인천 송도캠퍼스에서 영화학과 교수로 일할 당시 송도 갯벌을 바라보며 영화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조개를 캐 팔았을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그 각본이 바로 영화 ‘미나리’였다.

정 감독은 어릴 때부터 총명했다. 정 씨는 아들이 옛날 일들에 대해 얼마나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영화 속에서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정 감독이 7살 무렵 아칸소 시골의 허름한 트레일러 홈에 도착해 계단이 없었던 트레일러에 들어가기 위해 아이들을 번쩍 안아 올려 주었던 일, 입었던 옷들, 집 안에 있던 소품 하나하나까지 당시와 너무 똑같아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는 영화의 디테일로만 따지면 실제와 90% 이상 흡사하다고 강조했다.

정 씨는 영화에서 묘사한 대로 병아리 감별사로 일했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계약에 따라 이리저리 이동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삶이 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이오와 주로 왔다가 1년 만에 콜로라도 주로 옮겨야 했고, 그 이후로도 애틀랜타, 아칸소 주 등지를 떠돌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아칸소 주에 50에이커의 땅을 매입했다.

영화에서 제이콥은 낡은 트레일러 홈 앞에서 기가 차 하는 아내에게 “이곳의 흙 색깔을 보라”며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실제로 정 씨는 “삽으로 1스퀘어피트의 땅을 파서 그곳에 지렁이가 얼마나 있는지를 보면 땅의 비옥도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산 아칸소의 땅은 그런 곳이었다. 땅만 파면 지렁이가 끝도 없이 꿈틀거리는 비옥한 땅. 그래서 그는 그곳에서 농장을 시작했다. 촬영 일정이 25일에 불과하다 보니 모든 것을 다 세트로 재현할 수 없어 영화에서는 한국 채소만 키운 것으로 묘사된 농장이지만 실제로는 각종 채소와 3650그루의 한국 배나무, 100여 마리의 엘크 사슴을 기른 제법 큰 규모의 농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은행 융자도 많아 재정적으로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정 씨는 “땅은 생명의 원천이다. 모든 생명체는 흙에서 살고, 생명을 부화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에서도 아버지 제이콥은 아칸소의 50에이커 비옥한 땅에 무한한 애정과 집착을 보인다.

영화의 하일라이트인 화재 장면에서는 야채 창고만 불길에 휩싸여 전소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더 참혹했다고 한다. 배 과수원의 절반이 불에 타버린 대형 화재였고, 그 이후 병충해가 심해져 결국은 과수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파릇한 미나리같은 두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정 씨는 회상했다.

미나리는 희망의 상징이다. 어디서든 물만 주면 잘 자라는 미나리는 잡초처럼 끈기 있게 살아남으며 번성한다. 정 씨의 희망이었던 남매 모두 미국 토양 속에 심은 한국산 미나리처럼 착실하게 잘 자라 둘 다 아이비리그 명문인 예일 대학교에 진학했다. 의사가 되기를 원했던 아들이 영화로 진로를 바꾸자 실망한 아버지에게 정 감독은 “저는 영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런 다짐 때문인지 르완다 내전에서 원수인 두 집안이 용서와 화해에 이르는 모습을 혼자 카메라 들고 찍은 정 감독의 첫 영화 ‘문유랑가보’를 비롯해 ‘미나리’까지 4작품 모두 사람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정 씨에게 가족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말을 듣고 어땠는지 물어봤다. 정 씨는 “뭐 할 얘기가 있다고 그걸 영화로 만드느냐고 했다. 그런데 아들이 나한테 한소리 들을까 봐 무서웠는지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영화를 찍는 동안 나를 아예 촬영장에 얼씬도 못 하게 했다. 미나리 길러 놓은 것만 사람 시켜서 싹 파다가 촬영지에 심어놓았더라. ‘미나리’는 나한테 혼날까 봐 몰래 찍은 영화”라며 웃었다. 이어 정 씨는 “영화 개봉 전 추수감사절에 LA에 있는 아들 집에 가족이 모여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 공개 전에 먼저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하더라. 나중에 내가 ‘이걸 영화라고 만들었냐’, 혹은 ‘부모의 치부를 드러내는 영화를 왜 만들었냐’고 할까 봐 많이 떨었다고 고백하더라.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까 지난날들이 생각나 너무 슬펐다. 그래서 가족이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고 전했다.

딸 정이슬(미국명 레슬리)씨 역시 예일대를 졸업하고 의사인 남편과 함께 현재 콜로라도에서 피부과 클리닉 7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슬씨는 자신이 낳은 아이 3명과 입양한 아이 1명 등 총 4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정 감독은 홍콩계인 아내, 초등학교 1학년인 딸과 LA에서 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제이콥은 전소한 창고 앞에서 절망만 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을 데리고 장모님이 가꾼 미나리 밭에서 미나리를 수확한다. 희망의 시작이다. 미나리로 그는 다시 일어날 발판을 만들고 있었다.

정 씨는 “영화 ‘미나리’는 오늘날의 자신이 있게 한 부모님과 외할머니에 대한 헌정영화라고 생각한다. 또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찾아온다는 ‘새옹지마’,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를 나타내주는 희망의 영화이다. 유별난 흙 사랑으로 무모하게 농사에 도전한 남편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견디며 아이들을 잘 키워준 아내가 사실 일등공신이다. 평생 그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 요즘 코로나19로 많은 한인들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도 곧 지나갈 것이다. ‘미나리’를 통해 다시 희망을 갖고 재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 씨의 가족들은 영화 개봉 이후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중심으로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소방관, 경찰관, 의사, 간호사 등에게 ‘미나라’ 영화티켓을 선물하고 있다. 이렇게 ‘미나리’를 관람한 인원은 250여명에 이른다.

정 씨는 “기회가 된다면 덴버 등에서도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할동하는 분들, 한국전 참전용사 등에게 미나리 영화티켓을 선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덴버지사=이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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