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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봄은 왔는데

한창 뛰놀며 친구들과
웃고 공부할 나이에
집에서 온라인 수업하며
마음 놓고 나갈 수 없으니
그 답답함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겨우 내내 앙상했던 가지들은 움을 틔우고 몽우리를 맺어 어린 잎들을 내 보내고 있다. 아기 손가락 같은 가녀린 잎들은 겨울 한 철 가지 속에서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활기차게 자라고 있다.

손주들이 다닌 학교에서 설문 조사를 했다고 들었다. 4월 쯤 학교 문을 열려고 하는데 귀 자녀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대부분 부모들은 그 물음에 확실한 답을 못할 것 같았다. 결론은 등교시키겠다는 학생 수는 25%가 채 안된다고 했다.

나는 손주가 다섯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닌다. 한창 뛰놀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공부할 나이에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하며 어디 한번 마음 놓고 나갈 수가 없으니 그 답답함을 어찌 다 표현하겠는가. 중학교에 입학을 했는데도 학교 한번 가지 못하고 인터넷으로만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선생님을 만나 공부하는 손녀가 어찌나 딱한지 별 일이 다 있다고 푸념을 하면 한사코 괜찮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공부하다 잠시 쉬는 시간이면 마당에 나가 크게 숨을 쉰 다음 다시 방에 들어간다고 제 엄마가 귀띔해 주었다.

이런 시간이 벌써 1년이 넘었다. 생각할수록 딱하기만 하여 도대체 이 팬데믹이 언제 쯤 끝날 것인지 갑갑해서 인터넷에 들어가 지난 날의 팬데믹을 살펴 보았다. 아주 오래 전 온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를 제외하곤 대부분 1년 내지 2년이면 종식되었다. 5월이면 16세 이상 모든 미국인들은 백신접종을 끝낸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이 백신 개발에 전력을 다 하고 있다 하니 희망을 갖고 극복해야겠다.



봄이 오기 전 겨울 나무는 아무 희망이 없고 앙상하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새 싹이 나더니 아기 손만큼 자라 하루가 다르게 커 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 손주들이 밖으로 나갈 차례다. 나가서 마음 껏 뛰놀고 큰소리로 웃어야 한다. 친구와 손 잡고 선생님을 보며 반길 때다.

금년 설에 샌호세 사는 손자들이 세배하는 영상을 며느리가 보내왔다. 팬데믹으로 못 본 지가 1년이 되었다. 삼형제 단정히 새배를 하는데 얼마나 예쁜지 꼭 앞에 있는 것 같이 생생했다. 엄마가 절하는 법을 가르쳤는지 작년 설날보다 훨씬 더 잘했다. 그런데 먹는 양보다 움직임이 더 많아 아주 날씬했던 둘째가 얼굴이 몰라보게 통통해졌다. 금방 운동 부족임을 느낄수가 있었다. 팬데믹 이전에 학교 도네이션 달리기를 할 때 찍은 경쾌하고 멋있었던 그 표정이 아니었다. 달리는 그 모습이 너무 멋 있어서 확대하여 지금도 거실에 걸어 두고 있다.

팬데믹 이전에는 우리도 항상 바빴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나 학원에서의 연중 행사만도 여간 많았다. 우리 부부는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았다. 손주들이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를 배우고 그때 그때 발표하고 중학교 이후에는 지역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극장을 빌려 정기 발표회도 가졌다. 나는 원래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손녀가 들어가 바이올린을 하고 있으니 자연히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둘째 손녀의 줄넘기는 또 엄청났다. 여러가지 기교가 많았지만 그래도 그중 제일 재미있는 것은 우리 손녀의 3분 동안 쉬지 않고 넘는 줄넘기였다. 3분이 그렇게 긴 줄은 그때 알았다.

또 샌호세에 사는 큰 손자가 하키 시합을 하러 어바인에 왔다. 얼음판 위를 스케이팅하며 막대로 상대방 공을 뺏어 골에 넣는 경기였다. 우리 손자가 공을 뺏으면 '야!' 를 외쳤고 한 골을 넣었을 때는 얼마나 기쁜지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하키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고 투구를 쓴 어린 선수들의 모습이 정말 앙증스러웠는데 나중에 옷가방을 들어보고 너무 무거워 안쓰러웠다.

피아노 발표회도 갔다. 긴 곡을 거뜬히 외워 연주하는 우리 손자들, 트로피를 받기 위해 잠깐 무대 위에 서 있는데 한쪽 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초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내 눈에는 영화 속의 어느 멋진 틴에이저 배우 같았다. 그리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큰 손녀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학년말 탤런트 쇼를 했는데 오케스트라 연주는 말 할 것도 없고 많은 학생들이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어디서도 그렇게 멋있고 기분 좋은 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관중석 뒤에서 부터 입장하는 마칭 밴드대원들의 그 씩씩하고 리드미컬한 행진은 내가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우보 민태원님의 수필 ‘청춘예찬’에서 나오는 바로 그 청춘들이었다.

우보는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의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라고 청춘을 예찬하였다.

그들은 인생의 황금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이렇게 바쁘게 다니면서 우리는 그들의 크는 모습을 눈에 넣었고 가슴으로 느꼈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행사에 다니며 다섯 손주들의 크는 모습을 학교에서 학원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셀 수 없이 많이 보았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학교도 학원도 거의 문을 닫고 모두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봄이 되었다. 꽃들이 많이도 피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의 꽃이 필 차례다. 팬데믹 이전처럼 학교에 나가 어린이들은 어린이 꽃을 피우고 청소년은 그들의 꽃을 당당하게 가꾸어 화단을 꾸밀 때다. 학교 교정에 학생들이 바삐 오고 가고 교실마다 아이들의 웃음꽃이 피어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바빠질 것이다. 오늘은 둘째 오픈하우스, 내일은 첫째 음악회. 그리고 다음 주는 샌호세 큰손자 하키 시합을 보러 가야 하니 손자들이 좋아하는 김 부각을 만들어야겠다고 행복한 부산을 떨게 아닌가. 그날이 오기를 손주들을 사랑하는 할미는 오늘도 두 손을 모은다.


이영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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