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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그대의 문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있소

나는 그대의 문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있소 / 그대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 그대의 문이 열리고 저 언덕 너머 이야기 / 바람에 실려 그대의 열려진 문 앞에서 / 이야기꽃을 피우며 자지러지다 / 열려진 그대의 문안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 나의 문과 그대의 문은 통해져 / 그대의 문이 열리면 나의 문도 열려져 / 나는 한없이 깊은 그대에게로 가서 / 그대를 만나고, 그대를 사랑하고 / 바람이 전한 언덕 너머 이야기를 나누다 / 지는 노을에 기대어 밤을 맞이하고 싶소 // 그대와 함께, 정령 그대와 함께 / 저 노을 언저리 빛 고은 하늘을 보다 / 오늘 하루를 마감하고 싶소 / 지나온 슬픔과 못 이룬 행복도 어둠에 묻고 / 혹, 그대가 잠들면 내 팔을 내주고 / 어둔 밤하늘 빛나는 별을 헤아리고 싶소 // 그대의 문 앞에서 이른 목련의 행복도 / 밤사이 우수수 낙화한 매화의 아픔도 전하고 싶소 / 그대의 눈물로 슬프고, 그대의 웃음으로 환해지는 / 나는 그대의 문 앞에서 계절을 맞이하고 싶소 /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러나 다 알 것만 같은 / 그대를 오늘도 기다리며 / 그대의 문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있소

늦은 나이에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젋은 시절에 비해 순발력도 떨어지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친구 신청이나 친구 요청에 반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올해로 5년 째 페북을 통해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혹자는 페북 시작부터 친구로 5년 넘게 삶을 나누고 있지만, 혹자는 이 세상을 작별해 더 이상의 소통이 가능치 않은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몇 달 전까지 자작시를 올리며 많은 친구들의 공감을 얻었던 한 시인의 죽음 앞에서 무슨 말을 남겨야 하나 마음이 우울했던 시간도 있었다. 올라온 미술작품이 마음을 사로잡아 긴 댓글을 보내기도 했다. 때론 시 아닌 시를 보내기도 했고, 감정이 솟구쳐 자제 없는 글을 올리고 나서 후회를 한 적도 있었다. 나의 속마음을 들려주기도 하고 때론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감정을 공유하기도 했다. 슬플 땐 같이 울고, 기쁠 땐 함께 축하하며 그대의 문과 나의 문을 열고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개 중엔 친구신청을 하고 난 후 한번도 소통의 의지를 표현해주지 않으신 분들도 있었다. 무엇 때문에 문을 두드렸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나의 문을 열지 않고 그대의 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문을 열 때 그대의 문도 열리는 것을 알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나의 경우 페친의 반 이상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가, 무용가, 사진작가 등 나와 비슷한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대의 전시회나 출판기념회, 공연의 소식을 들으면 잠들고 있는 내속의 감성이 출렁거리곤 했다. 뜬눈으로 밤을 샌 날도 있었다. 그대는 모르지만 나는 그대의 문 앞에서 오랜 시간 서성인 그리움 때문이었다. 2009년 시로 한국문단에 등단한 후 10년이 되는 해 첫번째 시집(바람에 기대어)이 나올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그대의 격려와 사랑과 관심 때문이었다. 올해, 늦으면 내년 봄 두번째 시집과 그동안 미주 중앙일보에(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실린 칼럼을 모아 나의 그림과 함께 책을 내려고 한다. 이 계획이 가능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그대의 문과 나의 문을 열고 주고 받은 갸륵한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열지 못한 많은 문들이 머리를 들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문이 어디 그대와 나의 문 뿐이겠는가?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문들을 열고 들어가고 또 닫고 나오기도 했다. 큰 대문이 있는가 하면 아주 작은 서랍문도 있고, 화려하게 장식된 문이 있는가 하면 초라한 싸리문도 있다. 장미넝쿨에 화려한 꽃문이 있는가 하면 마른 가지 뒤엉켜 있는 폐허의 문도 있다. 자동차의 문, 기차의 문, 비행기의 문, 컴퓨터의 문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세상의 어떤 문이라도 사람의 힘으로, 열쇠로, 혹은 코드입력으로 열 수 있지만, 사람의 힘으로 지혜로 열 수 없는 문이 있다. 미로같이 복잡하고, 깊어서 그 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문이 있다. 바로 마음의 문이다. 이 문은 한번 닫히면 열기 어려운 문이요, 한번 열리면 닫기 어려운 문이다. 이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키는 힘이 아닌 마음, 닫친 문을 열게 하는 그 따뜻한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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