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한인 대통령' 준비했던 '입양인 대부'…신호범 전 의원
하우스보이 출신 입양인
한인 정치 지망생 후원과
한민족 정체성 함양 앞장
양아버지의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18개월간 하루에 3시간만 자다시피 해 GED(고졸학력 인증서)를 받고 유타주 브리검영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피츠버그대 석사, 워싱턴 주립대 박사를 취득하고 메릴랜드대, 하와이대, 워싱턴 주립대, 웨스턴 워싱턴대 등에서 30여년간 교편을 잡았다.
고인은 워싱턴 주지사의 권유로 하원의원에 출마했다. 96%가 백인인 2만9000가구의 지역구에서 하루 150가구를 방문해 1992년 당선됐다. 또 1994년에는 연방하원의원에, 1996년에는 워싱턴주 부지사에 출마했지만 둘 다 작은 표차로 석패했다. 1998년 다시 주 상원으로 옮겨 5선을 했고 상원 부의장까지 역임했다.
고인은 상원에서 ‘스마일 의원’이라 불렸다.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얼굴에 늘 웃고 있는 모습으로 기억된다. 2014년 1월 7일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정계를 은퇴했다.
고인은 아시안을 경멸하는 뉘앙스의 용어 ‘오리엔탈’(oriental) 대신 ‘아시안’(Asian)으로 쓰도록 법안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미국 최고 해외 이민자상’(2003년)을 받았다. 워싱턴 주정부가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1월 13일을 ‘한인의 날’로 만드는 데 공헌했다.
한인 입양단체들이 개최하는 다양한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강연하는가 하면 한민족 정체성 함양을 위한 콘퍼런스를 열고, 장학금을 제공하는 등 누구보다 입양인들의 아픔을 보듬어줘 ‘입양 한인의 대부’로 불렸다.
최석춘 한국입양홍보회장은 “1970년 14살에 입양돼 유타주에 와서 마침 학교 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신 의원의 양어머니 폴 여사를 만났고 덕분에 당시 워싱턴 주립대 교수였던 신 의원으로부터 격려의 편지를 받고 힘을 냈다”며 “나중에 영감을 얻어 입양 단체를 만드는 데 영향을 받았다. 게스트 스피커로 많은 입양인에게 강한 메시지를 줬다”고 말했다.
고인은 또 자신의 성공과 열정을 후배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물려주길 원해서 한인 1.5세 중 정치지망생을 대상으로 장학회를 조직해 ‘한인 미국 대통령’을 준비하기도 했다.
워싱턴대학 한국학센터는 2014년 프로그램 이름을 ‘폴 신 한국학 프로그램’으로 변경했다. 고인은 1978년 이 대학에서 동아시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01년 한국학 강좌가 예산 부족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한국학 살리기’운동에 앞장선 바 있다. 2008년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수상했고 미국 역사와 이민사회 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앨리스 아일랜드상’ 등을 받기도 했다.
장례는 가족들만 참석해 열리지만 시애틀 한인회 주최로 별도의 추모식이 예정돼 있다.
장병희 기자 chang.byunghe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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