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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수식에서 용광로까지…배의 '일생'

사람은 누구나 먼 바다에 대한 동경을 지녔다. 바다 끝이 궁금했다. 궁금했던 먼 바다로 연결시켜 준 통로, 즉 배(舟)는 그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원시인은 통나무를 이용해 강을 건넜다. 통나무 여럿을 엮은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보니 훨씬 편했다. 뗏목에 노를 붙여 방향과 속도를 조절했고, 돛을 달아 바람을 이용해 항해를 시작했다. 노젓는 배(Rowboat), 돛단배(Sailboat)로 진화하면서 ‘배(Boat)’라는 명칭이 붙게 됐다.

필자는 동해에 접한 항구 도시에서 태어났다. 덕분에 어려서부터 배를 실컷 보면서 자랐다. 어쩌다 항구에 나가보면 제1부두에는 작은 어선들이 생선 비린내와 함께 따개비처럼 줄지어 붙어 있었다. 제2부두는 해군 전용부두로 함정이 정박하는 날엔 헌병들이 엄격하게 통제를 했다. 제3부두엔 석탄을 실어가는 일본 상선들이 늘 대기하고 있었다. 그곳엔 기차로 운송된 수출용 석탄이 산더미처럼 집하돼 있었다. 바닷바람이 부는 날엔 석탄가루 먼지가 온통 하늘을 시커멓게 덮었다.

땅에 인구가 늘 듯이 바다에는 배가 많아졌다. 아기가 태어나 듯 많은 조선소에서 새 배가 탄생한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호적에 등록하는 것처럼 새 배에도 이름을 붙여주고, 선적(선박의 국적)을 선박등록청에 등록해야 한다.

아기의 국적은 부모의 국적과 출생지 법을 따르지만 배의 선적은 선주의 편리에 따라 결정된다. 배의 국적을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을 택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파나마, 바하마, 몰타, 온두라스, 마샬 군도 등 조세회피국을 선호한다. 세금이 면제되거나 세율이 낮은 국가들이다. 배는 선미(船尾)에 자기의 국적 국기를 항상 게양하고 다닌다.

조선소에서 배가 완성되면 바다에 띄우는 진수식을 거행한다. 진수식은 배를 지은 조선공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배와 선원들의 항해가 순조롭고 안전하기를 바라는 전통 의식이다. 배와 관련된 정부기관, 선주회사, 해운회사, 건조회사, 배의 선원 등 많은 하객이 배의 탄생을 축하한다.

식의 마지막 순서에는 배의 세례식이 있다. 주요 인사가 대형 샴페인 병을 들고 선수(船首)로 다가가 뱃머리에 샴페인 병을 던져 터트리는 의식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되듯이, 배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노인처럼 고령선이 된다. ‘인생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배도 철판에서 태어나 철판으로 돌아간다. 철판을 자르고 붙여서 블록을 만들고 블록을 연결하고 조립해서 선박을 건조한다.

선박은 약 30년의 나이를 먹으면 수명을 마치고 해체전문 조선소로 넘겨진다. 해체 조선소에서 일하는 해체공들은 스스로를 배의 ‘장례지도사’라고 부른다. 소위 노후 선박을 분해하고 해체하는 전문가들이다. 노후 선박에 달린 부품들은 수익성을 따져 재활용품, 중고품, 소모품 등 비싼 ‘장기’들이 적출된 다음 해체되어 용광로로 들어간다. 인간의 화장과 비슷하다.

의학이 발달해 인간 수명이 많이 늘어났다. 조선 기술도 진보해 강재와 도료의 품질이 고도화돼 배도 수명이 연장됐다. 하지만 경제상황에 따라 배의 수명은 연장되거나 일찍 퇴출되기도 한다.

앞으로 선박에도 인공지능이 도입돼 미래에는 자율운항 선박이 바다를 헤쳐 나갈 것이다.


이보영 / 전 한진해운 미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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