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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똘장군 나가신다

강아지를 돌보는 일은
거의 전부다 나의 일인데
딸이 통사정해 할 수 없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 녀석을
내 품 안으로 맞이했다

어느 날 검둥이와 누렁이가 왔다. 가든그로브에 사는 동생은 종종 한국인들이 포기하는 개들을 데려와 우리에게 기르라 했다. 16년 전 이 녀석이 왔을 때의 이름은 이쁜이었다. 아니 사내 녀석 이름이? 마침 고국에서 잠시 와 있던 딸아이가 또 한 번 좋은 일을 하면 어떻겠느냐며 나에게 사정했다. 나는 3년 전, 간질병을 앓아 매일 약을 먹이며 키웠던 라사압소 종인 눈망울이 큰 미녀, 쿠키가 떠나고 모처럼 자유시간을 누리고 있었다.

우리와 적응 상태를 보려고 거실에서 두 마리랑 장난치며 놀던 남편은 뜻밖에 다 기르면 좋겠다고 했다. 강아지를 거의 돌보는 일은 나의 일인데, 딸이 통사정하여 할 수 없이 나도 훌쩍거리며 녀석을 내 품 안으로 맞이했다. 애교쟁이 검둥이는 이웃에게 드리고, 나는 이빨이 날카롭게 생긴 녀석이 혹시 제명을 못살고 갈까 봐 누렁이를 택했다. 얼마 전 이웃의 개가 주인을 물어 안락사 주사를 맞은 이야기를 듣고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도사견도 아니고 영리한 골든리트리버가 잠깐의 실수로 주인을 물었을 텐데, 까다로운 법 때문에 개가 죽게 된 것이 난 측은했다.

한 번은 아침에 깨어나 보니 인형 같은 조그마한 강아지가 내 베개를 나란히 베고 옆으로 누워있지 않는가. 놀랍고, 어이가 없었다. 또 화장실까지 따라와 내 무릎 위로 훌쩍 뛰어 올라와 앉았다. 한 시도 사람 곁을 떠나지 않았다. 돌아보니 오래 전 한국 정부의 산아제한으로 아기를 더 낳지 않았는데, 혹시 이 녀석이 내 자식으로 환생했나. 묘한 인연이다. 지난 날 휴가 때 나타나 다시 떠나버리는 딸이 자신을 입양해준 은혜를 아는지, 목소리를 들으려고 전화기로 매번 달려오는 것도 신기했다.

영어랑 한국어 말을 들으려고 가지가지 모양으로 귀를 세워 기울이는 모습. 훈련 시킨 대로 악수하자, 뒹굴어라, 손바닥을 마주치자, 댄스하자 등등 묘기도 잘 부렸다. 함께 웃다보니 스트레스가 확 날아갔다. 손님들에게도 웃음보따리 선물했다. 꼬리뿐만이 아니라 슬프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도 자기 감정을 말해준다. 자기 의사가 뚜렷해 가끔 사나움으로 대들 때면 누가 주인인지 모를 정도이다. 다만 사회성이 부족해 다른 개들과는 으르렁대는 게 골치이다.



한 살배기 때다. 내가 첫 번째 수필집을 준비하느라 컴퓨터 글 작업하는 동안엔 방석의 모서리를 갉아서, 등에 업고 키웠다. 이빨이 가려워 품에 안고 있는 동안도 내 웃옷 단추를 박살내곤 했다. 산책을 가자고 하면 벌써 현관으로 가 목줄을 매라며 재촉한다. 어릴 적부터 시간을 맞추어 자주 데리고 나갔더니 큰 것은 앞문으로, 작은 것은 뒷문으로 가서 말해준다.

계란 크기보다도 작은 두뇌이건만 그의 사고력은 대단하다. 절대로 주인에게 미움 받을 짓은 안 한다. 외출 시에 데리고 가지 않는다고 지난번 쿠키처럼 방에다 똥을 싸는 화풀이도 안했다. 자기 방석이 따끈해질 정도로 망부석이 되어 대문만 바라보며 외출 나간 우리를 기다리는 충견이다. 내 바지 자락을 물어서라도 무엇인가 의사표시를 했다. 밥을 먹을 때는 한 개 한 개 씹어 먹는 우리 양반 강아지.

여러 마리를 키워보니 개의 지능지수도 사람처럼 각각이다. 집안 일을 하는 나를 졸졸 따라다녀서인지 다음에 내가 가서 앉을 장소를 예견할 정도이다. 짖어대는 늠름함과 우렁찬 목소리가 좋아 나는 똘장군이라고 부른다. 길에 나가면 몸집에 비해 귀가 덜렁하게 커서 사람들은 당나귀 귀 같다며 웃는다. 대화를 자주하는 내 이웃의 강아지는 다 기억했다. 힘든 일은 돌아가신 분들의 집 앞에서 한동안 머뭇거리며 강아지랑 함께 정든 이웃을 그리워하는 일이다. 이별은 항상 슬프다.

어릴 때는 발바닥이 벗겨질 정도로 테니스장에서 우리랑 뛰었는데, 이젠 한 눈이 백내장이니 장난감도 소용없다. 이빨도 하나둘 흔들거린다. 생로병사의 길을 가는 인간과 다를 게 없다. 지난해 겨울 괴상한 기침을 해서 코로나인가 걱정했는데 지나갔나 보다. 입맛을 잃어가니 나는 생강과 레몬 꿀물로 정성을 들인다.

지혜로운 노견을 모시면서, 강청화 스님께서 대부분 아버지가 죽어 개가 되어 온다는 말씀을 그냥 흘릴 수가 없다. 개를 기르면서 나는 우리가 먹는 동물의 살덩이에 연민을 보낼 줄 아는 사람도 되었다. 노견이 되니 밤중에 자다가도 일어나 문을 열어주어야 하니 나는 울상이다. 그래도 개를 기르는 이웃들이 무병장수하는 걸 보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서로 인연을 잘 만나면 팔자의 복도 터진다. 호령하던 남편의 큰소리를 무서워했는데 지금은 무릎에서 애교를 부린다. 이런 사랑의 보약으로 똘장군은 17살에 진입했다.

우울했던 지난해를 강아지에게나마 위안을 받으며 또 봄을 맞이했다. 이웃집 개처럼 기저귀를 차거나 암이랑 치매도 없이 건강한 희망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개와 정을 주고 받으면서 웃고 우는 사랑을 배운다.


최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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