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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변방은 창조와 변화의 공간

우리 미주한인사회는 변방이다. 삶의 질이나 경제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문화 쪽에서는 푸대접이 심하다. 한국에서는 미국 사람이라고 제켜놓고(한 때는 X포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미국 사회에서는 변두리의 자그마한 소수민족 커뮤니티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동포 예술가 중 한국에서 제대로 대접받는 이는 몇 명 안 된다. 아주 드물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디아스포라는 변방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 디아스포라 또는 변방이라고 하면 우선 처량하고 고달프고 외롭고 쓸쓸하고 그립고 서럽고 하찮은 것… 그런 느낌이 먼저 든다. 하지만 그런 것만은 결코 아니다.

신영복 선생은 변방을 창조의 공간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같은 변방의 문화인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귀한 말씀이다.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곳이 변화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신영복 교수 ‘변방을 찾아서’에서.

실제로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변방이 역사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 왔고, 인류 문명은 그 중심지가 부단히 변방으로, 변방으로 이동해 온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미술계를 예로 들자면 20세기 초 파리에서 현대미술의 꽃을 피운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떠돌이 이방인들이었다. 전후 뉴욕의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백남준, 이우환, 김환기, 김창열, 이응로, 윤이상… 외국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내며 자기 세계를 확립해 우뚝 선 예술가들이고, 서도호 등 많은 젊은 작가들이 뒤를 잇고 있다.

우리 앞에도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이야기, 변방이냐 첨단이냐 우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변방의 힘!

그러나 변방이 창조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가장 결정적인 전제가 있다. 신영복 교수는 이렇게 강조한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 변방은 그야말로 변방(邊方)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미국사회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열등의식에서 벗어나는 일을 달리 말하면 자신감을 갖는 일이다. 터무니없는 자만심이 아닌 진정한 자신감….

한국은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고 고난을 겪으면서 열등감에 짓눌려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경제는 물론 과학기술, 예술,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월드컵 축구 응원, 촛불집회, 백남준, 싸이나 방탄소년단, ‘기생충’이나 ‘미나리’ 같은 영화… 그런 것들이 변방에 사는 우리에게도 큰 힘과 자신감을 심어준다. 우리 미주사회의 예로는 29년 전 LA폭동 당시의 대규모 평화대행진 같은 일이 우리의 저력을 증명해주었다.

이제는 열등감과 자신감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주눅 들 필요도, 우쭐댈 필요도 없다. 물론 근거 없는 자만심은 절대 금물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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