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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아버지의 틀니

병원에 약속이 되어있는 날은 심란하다. 오늘도 나를 지탱해 주던 또 하나가 내게서 떠나는 날이다. 떠나려고 몇 날 밤을 그리 섧고 아프게 나를 붙들고 흔들었나 보다. 마취용 주삿바늘이 눈에 어른거린다. 이별은 늘 고통과 함께 오는 모양이다.

어린 시절 나는 주전부리로 누룽지를 좋아했다. 바싹 말라 돌 같은 것을 입에 넣고 따가락 따가락 한참 씹다 보면 기막히게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우러나왔다. 어머니는 이와 누룽지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덜컥 겁이 났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안쓰러워했다. 다치면 어쩌려고 하는 불안이 섞여 있었다.

생선 중에 맛 값 하느라 성깔이 날카롭고 도도한 갈치 뼈도 어금니의 위력 앞에 서슬 퍼런 제 성질 한 번 못 내보고 뼈마디부터 아작아작 뭉개져 버렸다. 단단한 이를 믿을 나이였다.

이 뺀 자리에 혀를 돌려보면 빠져나간 공간이 허전하다. 빈자리만 허전한 게 아니다. 가을 내 잎들을 하나 둘 떠나보낸 나목의 마음처럼 자꾸 떠나가는 내 사랑들 앞에 나는 춥고, 시리고, 쓸쓸하다.

아빠, 괜찮아? 삼겹살의 오도독뼈가 씹혀서 빠드득하고 요란한 소리가 난 직후였다. 딸아이가 눈이 둥그레져서 걱정스럽게 묻는다. 딸은 앞에 놓여있는 삼겹살을 뒤적거려 동그랗게 붙어있는 오도독뼈를 일일이 발라냈다. 그즈음 이를 뽑고 임플란트로 대체하는 중이었다. 아이는 아비의 이가 하나씩 뽑혀 나갈 때마다 제 이를 뽑듯 안타까워했다. 괜찮아. 툭 던지는 말로 안심을 시켰지만 딸아이의 마음 씀이 길게 여음으로 남는다.

문득 오래전 고인이 된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당신께서도 하나씩 이가 뽑혀 나갔던 때가 있었을 터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나는 이를 다스리던 아버지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생니가 하나, 둘 뽑혀 나갈 때마다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부러 감추셨던 걸까. 아니면 철없는 자식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느라 보고도 기억에 새기질 못한 걸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야속한 자식이 얼마나 서운하셨을지 후회와 죄송스러움이 밀려왔다.

늦은 밤에 사진첩을 뒤져 아버지를 찾았다. 손녀를 껴안고 활짝 웃으시느라 이가 보이는 사진이 나왔다. 틀니였다. 저 틀니를 하기까지 상심했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모습 속에 딸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였다. 참으로 무심한 자식이었다.

마취 바늘 덕에 이는 쉬이 뽑혀 나왔다. 뽑혀 나온 어금니를 받아 들고 맹렬했던 한 시절을 본다. 포효했던 한때를 저 단단한 고집이 받쳐주었다.

소란스러운 세상이 떠나간 빈자리에 비로소 생을 고즈넉이 관조할 여유가 찾아들고 있다. 불같은 성정이 순화되어 좀 더 겸손해졌으면 좋겠다. 잠시 울적했지만, 이내 평온해진다.

아빠, 안 아파? 첫 손녀를 안겨 준 딸아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번뜩 아버지가 떠오른다. 응, 괜찮아. 말소리가 둥글게 말려들고 있다.


조성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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