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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유배지에서 뽑아낸 실 한 타래

처음이 힘들지 자꾸 하면 선수 된다. 변명은 찌질이들이 하는 짓이다. 책임 질 요량이면 변명할 궁리 필요 없다. 승승장구만 하면 하늘 높은 줄 모른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코 깨지고 밑바닥을 뒹굴어봐야 생의 짜릿한 파멸과 고독을 맛본다.

사는 게 고달프고 힘든 한 해였다. 유배지에 갇힌 선비(?)처럼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았다. 소통을 단절하고 나눔과 만남을 외면하고 사는 날들은 허망하고 쓸쓸했다. 그래도 얻은 것은 있다. 이판사판 달리기 경주만 하던 삶을 멈추고 지난 시간을 추스리며 돌이켜 볼 여유가 생겼다. 반성과 채찍은 아프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의 행로를 다시금 보게 한다. 그동안 너무 잘난 체 하며 살았다. 지푸라기처럼 작은 것을 드러내고 좁쌀 같은 믿음과 지식을 화려한 미사여구로 꾸며댔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집착하고 유한한 시간을 무한이라 착각했다.

‘사씨남정기’는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쓴 소설이다. 서포는 숙종이 계비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고 희빈장씨를 왕비로 맞아들이는데 반대하다가 남해도(南海島)로 유배된다. 내용은 중국 명나라 때 연수(延壽)는 15세에 장원급제 하여 한림학사가 되어 덕과 학문을 겸비한 사씨(謝氏)와 혼인하는데, 9년 동안 소생이 없자 교씨(喬氏)를 후실로 맞아들인다. 간악하고 시기심이 많은 교씨는 간계로 사씨부인을 모함해 폐출시키고 정실이 된다. 교씨는 간부(姦夫)와 밀통하며 남편을 조정에 모함하여 유배 보내고 재산을 가지고 간부와 도망친다.

‘사씨남정기’는 유배지에서 흐려진 임금의 마음을 참회시키기 위해 썼다고 알려진다. 궁녀가 이 작품을 숙종에게 읽도록 하여 왕의 마음을 회오시키고 인현왕후 민씨를 복위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서포는 한국문학은 마땅히 한글로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문소설을 배격하고 이 작품을 창작했다.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 (金鰲新話)’ 이후 맥이 끊긴 소설문학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한글로 쓴 소설을 천시하던 당시에 참된 소설의 가치를 인식하고 쓴 이 소설은 한국 고대소설의 황금시대를 가져오게 한다.

쉽게 성사되는 일은 없다. 궁지에 몰리면 쥐구멍이라도 찿는다. 지난 일년 동안 혼자 사는 연습하며 생의 염색체를 갱신했다. 익숙함과 편안함 대신 갱신과 혁명의 고삐를 다잡았다. 사람 사이에 부딪히지 않으니까 사색과 사고의 폭이 넓어졌다. 언제 홀까닥 생을 접을지도 모른다는 죽음의 불안감을 극복하고 남은 시간에 올인 하기로 한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는다. 생의 순간순간을 새로 풀잎이 돋아나듯 ‘늘 봄’으로 살기로 한다. 운명에 닥친 현상은 바꿀 수 없지만 해결책은 내 안에 있다. 손 놓고 있다고 일이 해결된다면 머리 싸매고 걱정만 할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은 에너지를 충전시킨다. 익숙하지 않는 삶을 익숙하게 하는 것은 집념이다. 숫자가 사람을 슬프게 한다. 익숙하지 않는 손짓으로 흰머리 뽑으며 다시금 ‘청춘’이란 단어를 새긴다. 아름답고 당당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은 위선이 아니라 긍지다. 그림이던 소설이던 유배지에서 뽑아낼 실한 타래가 새벽별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시간이 오리라. 슬프지 않는 인생은 위선이다. 거짓이고 꾸밈이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뼈 없는 연체동물처럼 유연하게 허느적거리며 살기로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쓰러지지 않는다. 단지 외로울 뿐이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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