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스토리 In] 총격과 투표, 두 개의 작은 공

총은 전쟁이다.

영어 단어(gun)의 어원이 그렇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어 ‘군힐드(Gunnhildr)’에서 유래됐다. 군힐드는 전쟁을 뜻하는 두 단어 ‘gunnr’와 ‘hildr’의 합성어다. 원래는 성벽 투석기의 이름이었는데 중세에 ‘gonne’, ‘gunne’로 변형됐고 지금의 ‘gun’으로 짧아졌다.

총은 피를 부른다. 미국은 그 총 때문에 일상이 참사 현장이다. 지난달 16일 애틀랜타에서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숨졌고, 불과 엿새 뒤인 22일 콜로라도주 마켓에서는 10명이 희생됐다. 또 31일 오렌지카운티 한 사무실 건물에서는 4명이 사망했다. 희생자 중엔 9세 소년도 있다.

언론들이 이번이 3번째 총기난사라고 보도했지만 실제는 그보다 훨씬 많다. 총격사건 데이터베이스(Gun Violence Archive)에 따르면 올해 4명 이상 사상자가 발생한 총격 사건은 21건이다.



당연히 민주당 의원들은 또 총기 규제를 역설하고 나섰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걸 알기 때문에 일단 내뱉고 보는 말일지도 모른다. 전미총기협회(NRA)라는 공룡 단체와 여야가 반반 나뉜 의회의 정치공학적 구조, 무엇보다 수정헌법 2조가 보장한 권리는 넘을 수 없는 벽에 가깝다.

그나마 민주당 의원들은 말 뿐이라도 할 말은 하니 나은 편이다. 언제, 어디서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총탄에 희생되는데도 공화당은 엉뚱한 곳에 열을 올리고 있다. 투표권 제한법안이다. 공화 의원들 주도로 47개 주의회에서 361개의 선거 제한법안이 발의됐다. 법안 중 4분의 1이 투표시 신분확인을 더 엄격하게 만들었다. 유권자 등록도 까다롭게 했다.

법은 필요하다. 지난 대선에서 문제가 됐던 선거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정성의 10분의 1만이라도 총기 규제에 동참한다면 총기 규제는 현실화 될 수 있다. 사람 목숨보다 선거제한이 우선 순위는 아니지 않은가.

워싱턴포스트가 총과 선거를 주제로 지난 22일 충격적인 기사를 실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은 분석기사다.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당신이 거주하는 주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울까. 총을 사는 것과 투표하는 것’이다. 거짓말 같지만 정답은 대부분의 주에서 총을 사는 것이 더 쉽다. 신문은 총기를 실제 내 손에 넣기까지 시간과 투표 대기시간을 비교했다. 전국 3분의 2에 해당하는 34개주와 워싱턴 DC 지역에서 투표 대기시간이 총기 구입시간보다 길었다. 반대로 투표가 총기 구입보다 쉬운 곳은 일리노이, 미네소타, 워싱턴 등 단 3개 주에 불과했다. 나머지 13개 주에서는 양쪽 대기시간이 비슷했다.

선거와 총기 구입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특정일에 치러지는 선거는 수많은 인력이 여러 과정을 준비해야 하지만 총기 구입은 상품을 파는 행위일 뿐이라서다.

하지만 총과 선거는 근원을 파보면 비교 불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총을 의미있게 하는 총탄과 선거를 의미있게 만드는 투표는 공교롭게도 둘 다 어원이 ‘작은 공’이다.

총탄(bullet)은 중세 프랑스어 ‘작은 공(boulle)’에서 나왔고 투표(ballot)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무기명 투표시 사용한 ‘작은 공(pallotte)’에서 비롯됐다.

지난 선거에서 우린 작은 공을 사용했다. 선거라는 도구에 투표라는 작은 공을 넣고 방아쇠를 당긴 결과가 현재다. 어쩌면 내 한 표 때문에 총기 규제를 못하고 어쩌면 내 한 표 때문에 9살 짜리 소년이 숨졌는지도 모른다.

만약 총기 규제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본인이 뽑은 정치인의 입장을 찾아보기 바란다. 진영의 논리에 갇혀서, 혹은 맹목적으로 한 사람을 추종하다가 덮어놓고 작은 공을 쏜 건 아닌지 확인해봐야 한다.

진짜 전쟁은 투표다.


정구현 선임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