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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사색] 인간의 잔인성 어디까지일까

우주는 인간 지식이나 능력으로 그 한계를 규정하기 어렵다. 우주의 특징은 경계선이 없다는 것이다.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라는 말이 있는데, 다 추상적인 언어다. 그만큼 선을 긋기에 한계성을 말하기 어렵다.

흔히 인간을 소우주라 한다. 인간의 마음 씀씀이나 생각하는 마음의 분량이 끝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삶에 비추어 보거나, 특히 인간의 악한 면에 대입시켜 보면 정말 끝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생각의 차이가 나게 되고, 생각의 차이는 불평을 낳고, 불평은 미움을, 또 그 미움은 갈등을, 갈등은 싸움이나 투쟁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결국, 인간을 매장하거나, 최후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생명을 빼앗는 가운데서도 고통까지 가미하는 잔인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잔인성은 인간 존엄성이나 권리가 발전하지 못했던 시기에 두드러졌다. 지금이야 사형을 시켜도 안락한 방법을 동원하지만, 고대 시대에는 그야말로 사형 집행자들도 인간인가 할 정도로 사납고 끔찍한 방법을 사용했다.



구약성경을 보면 사형수를 특히 정치범들을 나무에 매달아 사형시켰다. 정치적 사건, 즉 혁명을 한다든가, 정권에 반기를 든다든가, 정권과 연관하여 폭동을 일으킨 자들은 나무에 매달아 사형시켰다.

나무에 매단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즉, 정치범을 체포하여 옷을 완전히 벗기고, 심한 매질을 하거나 가혹한 신체적 학대를 가하여 절반쯤 혼절시켜 놓고, 살아 있는 상태에 칼로 명치 밑을 크게 짼 뒤,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만한 굵은 말뚝 한쪽 끝을 연필을 깎듯이 뾰족하게 깎아 그것을 명치에 꿰어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언덕에 세워 놓는 것이다. 높은 언덕에 세워 놓는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공포감을 가져 정권에 항거하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잔인한 방법은 구약성경의 여호수아 시대 때도 흔히 있었던 현상이었다. 당시 상호 붙잡힌 적군 포로들을 그런 방법으로 사형시켰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하만이 유대인 모르드개를 사형시키려 하다 자신이 달려 죽기도 한 사형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로마 시대에는 십자가형이 유행했다. 십자가형 역시 정치범들에게 적용되었는데, 당시의 정치범들이란 로마 정권에 불만을 가졌던 자들이었다. 밖으로는 로마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던 자들 대부분이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사형당했다.

정치범을 체포하여, 역시 옷을 벗기고, 살아있는 범인의 두 손바닥과 발목에 큰 못을 박아 체중을유지하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마지막에는 창으로 심장 부분을 찔러 운명케 했다. 살아 있는 사람을 그렇게 사형시켰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잔인에 잔인을 가중한 것이다.

히암마코비의 ‘유대 혁명’(Revolution in Judaea)이나, 안드레 트로큼의 ‘예수와 비폭력 혁명’(Jesus and Nonviolent Revolution)에 의하면, 예수님이 두살 때 이미 2000명이나 되는 정치범들이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었다 증언한다.

예수는 정치범은 아니었지만, 모략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고 죽었다. 쇠젓가락이나 인두를 달구어 살아있는 몸에 지짐을 하기도 하고, 잔인성에 끝이 없어 부관참시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형언할 수 없는 방법이 인간을 미워하고 살해하는 일에 동원되었다. 그렇게 상상하지 못할 잔인성이 인류 역사를 통해 흘러왔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뜻을 실현하여 의로운 인간 세상을 만드시려다 그런 잔인한 로마 형법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후 돌아가셨다. 보통 죽음의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죽으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잔인함은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우주에 경계선이 없고, 한계성이 없듯이, 소위 소우주라 불리는 인간의 생각, 그 생각에 의한 악한 행동들이 끝이 없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고통당하시고 죽으신 고난주간에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장석민 / 빛과 사랑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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