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 아침에] 무지가 만드는 편견

나는 무서움이 많은 아이였다. 학교 화장실에 달걀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누가 계란을 그곳에 빠뜨렸는데 그 계란이 원한을 품고 귀신이 되어 아이들만 데려간다고 했다. 달걀귀신이 무서워 화장실에 갈 때는 친구들과 같이 갔다. 집과 학교를 오가던 길에 도립병원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처녀귀신, 애기귀신이 산다고 했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눈앞에 다가왔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몇몇 학생들과 다시 학교에 모여 과외수업을 받았다. 수업은 밤이 깊어 끝났다. 친구들과 같이 교문을 나오면 인적 끊긴 괴괴한 길을 혼자서 걸어가야 했다. 발끝에 뭔가 스치기만 해도 간이 콩알만 해지곤 했다.

그날 밤도 수업이 끝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다. 귀신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아 머리카락이 꼿꼿해졌다. 순간, 길 건너 쪽에서 하얀 공 두 개가 굴러오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귀신이다.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집 대문을 박차며 엄마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하얀 고무신을 신은 엄마가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내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한 젊은이가 목이 말라 우물가로 갔다. 두레박에 물을 올려 마시는 순간 뭔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단다. 이후 그는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엄마가 물었다. 그는 물 위에 떠 있던 기다란 나뭇잎 그림자를 뱀으로 보았고, 그 뱀이 몸 안으로 들어갔다고 믿었단다.



모르면 편견을 갖기 쉽다. 낯선 이 땅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할 때 문화와 인종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고정 관념이 내게 있었다. 어떤 인종은 폭력적이고 위험하다는 편견이었다.

유색인종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마켓을 할 때였다. 우락부락해 보이는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꼼지락거리면 권총을 꺼내지 않을까 싶어 불안했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캔디가 놓인 선반에 손이 왔다 갔다 하면 사지 않고 주머니에 넣었을 것 같은 의심이 들곤 했다.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들의 문화나 역사를 배우며 이해하려 했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었다.

최근 아시안을 상대로 폭행 폭언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이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새겨졌듯이 그들도 우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근거 없는 미움과 질시다. 불행의 씨앗이다.

어린 시절, 밤길 마중 나온 어머니를 몰라보고 냅다 도망쳐 집으로 달려갔던 일이 떠오른다. 세상에 어머니를 도깨비로 오인하다니. 무지와 편견, 그리고 사리분별 모르는 어린아이가 빚어낸 촌극이었다.

지금 번지고 있는 아시안 증오 분위기는 실체가 없는 허깨비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다. 학교 화장실에 산다는 달걀귀신이 미국까지 건너와 설쳐대는 격이다. 두레박에 떠 있던 나뭇잎 그림자를 뱀으로 착각했던 젊은이처럼 착시현상이다.

도깨비는 날이 밝으면 사라질, 사라져야 할 헛것이다.


이정숙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