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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분자] 한인 가정 불화로 폭행, 살인까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4화> '간호사의 대모' 유분자
<4> 가정법률상담소 발족 비화

1983년 LA를 방문한 이태영 박사와 함께.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이다. [유분자 이사장 제공]

1983년 LA를 방문한 이태영 박사와 함께.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이다. [유분자 이사장 제공]

1983년 LA한인타운으로 사무실을 옮긴 직후. 왼쪽부터 김신형 초대소장, 나, 김혜숙 부소장, 임승향 부소장, 문영자 부이사장, 양정자 자문위원. [유분자 이사장 제공]

1983년 LA한인타운으로 사무실을 옮긴 직후. 왼쪽부터 김신형 초대소장, 나, 김혜숙 부소장, 임승향 부소장, 문영자 부이사장, 양정자 자문위원. [유분자 이사장 제공]

1980년대 한인이민 폭증
가정 불화로 폭행·살인까지
고 이태영 박사 요청 계기로
1983년 가정법률상담소 개설
‘이민 가정 파수꾼’ 자원봉사
존폐위기 딛고 대표단체 성장


지금도 ‘그때 그 일’만 생각하면 명치 끝이 아릿하게 아파온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처 때문이다.

미주 최초의 간호정보지인 재미간호신보는 1983년 창간 5년째를 맞아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매달 3000~5000달러에 달하는 적자(당시 내 간호사 월급이 1000달러였다)를 내 주머니돈으로 메워온 신문은 그해 3월 800페이지 분량의 ‘해외한인간호원총람’까지 펴내면서 손익 분기점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일부 간호협회원들이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제기했다. ‘재미간호협회 회장에서 물러난 유분자가 간호신문 발행인을 맡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신문은 협회의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내게 발행인 사임을 종용했다.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간호신보는 협회에서 도움을 받지 못해 내가 창간했고 재정도 내가 책임져왔다. 어렵게 운영해온 신문이 흑자를 보게 되자 이제 와서 그 결실을 가로채려는 심보였다.



괘씸했다. 자식 같은 신문에 대한 애착도 접기 어려웠다. 소송을 생각했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아무리 내가 옳다 해도 소송하면 ‘한인단체가 싸운다’, ‘간호사들도 별수없네’라고 한인들이 혀를 찰 것이었다. 발행권을 협회에 넘긴 지 5년 만에 신문은 폐간됐다.

믿었던 이들에게 받은 상처는 더 아프다. 빨리 추스르자 결심했던 계기는 더 큰 이타심에 눈을 뜨면서다.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변호사이자 여성운동의 태두인 이태영(1914~1998) 박사다.

#이태영 박사와의 만남

누군가를 만나 인생이 크게 달라졌다면, 난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믿는다. 이 박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 사회생활은 간호계에서만 머물렀을 수 있다.

이화여전을 수석 졸업한 이 박사는 도산 안창호와의 연을 통해 독립운동가인 정일형과 결혼했다. 해방 후 그는 제 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여성으로 유일하게 합격했다. 아이 넷을 둔 주부가 사시에 합격했으니 전국적인 뉴스였다. 최초의 여성 판사가 될 뻔했지만 남편이 야당의원이라는 이유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 때문에 판사로 임용받지 못하고 결국 변호사가 됐다.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가 1956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설립한 것이다.

이 박사와 가까워진 건 1973년 그가 가정법률상담소 회관(백인회관) 건립 후원 요청차 LA를 찾았을 때다. 강단에 선 그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요즘 여성 지위가 높아졌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자리’를 찾고 있을 뿐이죠.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사람 노릇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10년 뒤 1983년, 한창 상심해있던 내게 이 박사가 “도와달라”고 했다. LA에도 가정상담소를 세우자 했다. 다시 심장이 뛰었다.

#가정의 눈물을 닦다

내가 이민 온 1968년을 전후로 미국의 한인 이민자수는 폭증했다. 이민정책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1965년 케네디 이민법 개정 이전인 1960년 1만1000명이었던 한인은 1980년 29만 명으로 무려 2600% 이상 늘었다. 한인사회가 발전할수록 여성들의 눈물은 더 깊어졌다. 아직도 ‘명태와 마누라는 두들겨 팰수록 부드러워진다’는 말이 남성들 입에서 거침없이 나올 때였다. 가정 내 다툼은 폭행, 살인까지 이어졌다.

이 박사의 상담소 설립 제안은 한인사회의 시대적 필요와 맞아떨어졌다. 가정을 간호해야 할 때였다.

1983년 1월 나와 석진영, 시몬 킹, 리나 리 등이 가정법률상담소 LA지부 창립 발기인이 돼 설립의 씨앗을 뿌렸다. 반년 뒤인 그해 7월16일 올림피아 호텔에서 창립 총회를 열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남가주지부(현 한인가정상담소)라는 명칭으로 단체가 설립됐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파견나온 양정자 부소장이 아니었다면 어려웠던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LA지부가 처음 자리 잡은 곳은 LA가 아니라 오렌지카운티였다. 설립 실무를 맡은 나와 석진영 선생의 생활 터전이 오렌지카운티였기에 애너하임 지역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상담소 후원자였던 웨스턴 뷰티 칼리지의 비키 박 회장이 LA한인타운내 본인 소유의 건물 한 공간을 무료로 임대해줘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상담소 초기 어려움이 참 많았다. 수입이라고 해봐야 이사회비와 평생 회원들이 내는 기부금이 전부였다. 타자기, 책상, 자동응답기 등 사무기기는 기증받아야 했다. 초대 소장을 맡은 김신형씨와 부소장 임승향, 김혜숙씨 등 직원들은 자원봉사로 살림을 꾸렸다.

설령 재정이 풍부 했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받는 이웃을 생각하면 한 푼이라도 아껴서 살림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초창기 실무진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 희생을 밑거름으로 세워진 상담소는 번민하는 한인 가정의 곁을 38년간 변함없이 지켰고, 연예산 500만달러가 넘는 한인 대표단체로 성장했다.

#비온 뒤 땅이 굳 듯

지난 세월 가정상담소가 평탄하게만 운영된 것은 아니었다. 존폐 위기까지 몰고 간 사태가 창설 18년만인 2001년 6월에 벌어졌다. 어느날 중앙일보를 펼쳐들었는데 가정상담소와 청소년회관(KYCC) 사이에 합병이 논의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보도였다. <본지 2001년 6월15일자 a-3면>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결국 예산 문제였다. 상담소가 LA카운티 아동복지국에 신청했던 25만 달러의 기금을 받지 못하게 돼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했고, 상담 프로그램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불가피하게 합병을 고려중이라고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 상담소는 한인 1세들의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관이었다. 1.5세와 2세 청소년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가 맡을 역할이 아니었다. 통합을 추진한 실무진에도 화가 났다. 이민가정의 파수꾼이어야 할 실무진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타 단체와 합병을 추진하는 것은 그야말로 봉사의 의미를 모르는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창립 1세대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적극 반대했고, 언론사에 기고문을 게재해 상담소 필요성을 역설했다. 통합 보도가 난 지 1주일 뒤인 23일 이사회에서 합병 계획은 반대 7표, 찬성 6표, 단 한 표 차로 없던 일로 됐다. 그 후 상담소는 이사진 전원이 교체되는 진통을 겪고 다시 살아났고, 흔들림 없는 뿌리 깊은 나무로 한인사회 버팀목이 되고 있다.

지금도 가끔 가정상담소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유사 상담 기관이 많고 무엇보다 교회에서도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데 굳이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이다.

그럴 때 마다 난 미주 한인 교계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나성영락교회의 김계용(1990년 작고) 초대 담임목사의 말씀으로 답을 대신한다. “교회가 성도의 가정 문제를 상담하면 성공해도 교인을 잃고 실패해도 교인을 잃습니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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