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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술 이야기

술술 풀린다. 애주가한테 술은 세상을 풀어주는 해결사다. 목을 타고 그것이 넘어가면 막혔던 세상이 시원하게 뚫린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이 무엇이고, 잘 된다고 한들 무엇이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맨정신으로 넘길 수 없는 기막힌 순간도, 술만 들어가면 전신에 혈관이 열리고 답답하게 막혔던 세상은 강물처럼 흐른다.

술은 때때로 삶의 상처를 달래주는 진통제로, 영혼과 영혼을 소통하게 만드는 영매사로, 뻑뻑한 대인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로 그 역할을 한다. 또 술은 속 깊이 고인 감정을 끌어 올리는 마중물로, 삶의 실타래 매듭을 풀어주는 해결사이기도 하다. 게다가 술의 알코올 성분은 영혼을 소독하고 정제시켜 오염되지 않은 진심을 드러나게도 하지 않는가.

아버지는 평소 말이 없어 과묵하셨다. 하지만 아버지가 거나하게 술이 취하는 날이면 당신의 노래는 동내 어귀부터 시작해 골목 안을 가득 메웠다. “백마강 달밤에…”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노래는 우리 집 마당에 들어설 때까지 끝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남정네들에게 위압감을 줄 만큼 체격이 크셨기에, 사람들에게는 거스르기 어려운 동네 어르신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밤 골목에서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아버지의 음주 사실을 알아내어 미소 짓곤 했다.

평소 말이 없으셨지만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를 몸소 거두고 고요한 골목을 흘러간 노래로 채워 놓길 좋아하셨던 아버지, 숨막히고 부담스러운 당신의 카리스마가 정겨운 친근감으로 둔갑된 것은 애주가였던 아버지의 술이 그 촉매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편하게 마시면 일이 술술 풀리지만 살살 마시지 않으면 질질 꼬이기 쉬운 술. 술에 과민 반응이 없는 사람이라면 적당한 술은 하루를 재충전시키는 배터리로, 지친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활력소 역할을 한다.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요즘 나는 술을 음식에 넣어 먹는다. 고된 삶을 채워 줄 먹잇감이기에 지친 삶의 통증을 잠시 진정시켜 줄 술이 섞여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가짜와 사이비로 오염된 세상을 먹이로나마 순수하게 소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요리할 생선에 술을 바르면 그것은 순간 마술을 일으키는지 비린 냄새를 깔끔하게 제거해준다. 한편으로 술이 스트레스로 경직된 영혼의 긴장을 풀어주고 완화시켜 준다면 그것은 뻑뻑한 고기의 육질 또한 마사지를 함으로써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음식에 술을 넣는 이유는 거칠고 각박한 세상도 때로는 술의 부드러운 마사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혼을 취하게 하는 술의 에탄올. 기나긴 인생에서 가끔 무언가에 취할 수 있다면 삶은 한층 흥미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연둣빛 봄에 취하고, 들꽃 같은 사랑에 감취되고, 영혼을 써 내려가는 글쓰기에 황홀해지고, 나비가 꽃에 탐닉하듯 술에 도취되고.

취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의 신선함을 맛보며 더 깊은 삶을 음미할 수 있는, 생명체의 축복 아닌가. 이런 생각에 젖어 있노라니 불현듯 한잔 술이 그리워진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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