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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할머니 마음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는 특별한 느낌을 담고 있는 단어가 몇 개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어머니’라는 말이다. 언제 어디에서 들어도, 그 자신이 어떤 모습의 어머니를 가졌다고 해도 항상 불효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식을 위하여 자신의 귀한 것을 아낌없이 내주었던 자식 사랑의 감동이 있어 누구나 눈물 짓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말이다. 우리는 이 단어 위에 또 하나의 한없이 푸근한 언어를 갖고 있다. 어머니의 얼굴 뒤에서 언제나 끝모를 사랑을 조용히 안고 있는 ‘할머니’라는 말이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과는 결이 다른 당신의 그저 귀여운 아이들을 향한 가늠할 수 없는 베품의 마음이 거기에 있다. 무조건 이쁘고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고 아깝고 안스러운 보물 같은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거기에 있다.

아이들 버릇 나쁘게 한다며 똑똑한 엄마들이 앞을 막아서도 콧방귀로 지나치며 쌈지에서 감추었던 용돈 꺼내 건네는 손길이다. “너도 이렇게 컸다네” 혹은 “네게 못해준 것 얘에게 다 해주고 싶네” 하며 싫다는 손자를 끌어 안는 가슴이다. 때로는 엉뚱한 소행으로 똑똑 엄마를 놀라게 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잘 그려 내어 감동을 주고 있는, 한국인 영화에서는 어린 손자에게 화투놀이를 가르치는 할머니가 나온다. 오래된 미국 서부 영화 속에서도 손자에게 포커를 가르치는 활달한 미국 할머니가 나온다. 웃음 찾기가 어려운 생활 속에서 우리를 웃게 하는 할머니의 엉뚱함에 “할머니는 참 !” 하며 그 주름진 얼굴을 기억하는 그리움이 있다.

“할머니표 김치 찌개가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을 본다. ‘할머니 표’는 어느 음식과도 어울린다. 사람이 평생 바꿀 수 없는 것이 입맛이라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한 입으로 말하는 “우리 어머니 밥상이 최고야” 라는 말도 ‘할머니 표’가 있어 가능하다. 그 깊게 베어있는 푸근한 맛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어느 동네든 숨겨진 맛집이 있고 혹 식당가에서 이름을 내고 있는 유명 맛집의 그 근원은 대개가 할머니 표 손맛이다. 그것은 고향의 맛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할머니는 우리들의 고향 같은 분이기 때문이다. 맛집을 운영하는 후손들이 그 맛을 계승하여 되살리고자 노력하게 하는 힘이다. 그러면서도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할머니의 그맛을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 참 어렵네요.

지금은 젊은 할머니들이 많다. 그래서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어, 할머니 되기 싫어” 이런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할머니라는 말이 늙었다는 말과 상당히 거리를 두게 된 요즈음도 왠지 늙어 보인다는 선입견은 여전히 피하기 어려운 듯하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구석에는 할머니 된 것을 은근히 과시하는 표정도 읽을 수 있다. 손자 보아 달라는 딸 아들의 말을 살짝 귀찮아 하면서도 매정하게 거절하지 못 하는 마음도 있다. 그분들의 전화기를 열어보면 초기화면에는 어김 없이 귀염성 있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이 있다. 생애 속에서 사람들이 갖게 되는 피할 수 없는 가족 사랑의 하나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때로는 우리의 나쁜 버릇에 일등공신이기도 한 할머니를 그러나 우리는 많이 그리워 한다. 뒷마당 너머에 나즈막히 자리잡고 언제든지 품어주던 뒷동산 같은 할머니의 정이 있어 자꾸 삭막해져 가는 듯한 인생살이를 견디어 내게 한다. 할머니라는 언어가 주는 귀중한 영상과 품은 뜻이 있어 그 말의 의미를 가만히 되새겨 보며 따뜻해진 마음으로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간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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