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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인물탐구 - 니고데모

윤우식 예닮장로교회 담임목사

니고데모는 신약성경 요한복음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요한복음3장1절. ‘니고데모’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니코데모스(Νικοδημοs)’입니다.
이 이름은 ‘승리’라는 ‘니케(νικη)’와 ‘백성’이라는 ‘데모스(δημοs)’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승리한 백성’, 또는 ‘백성의 정복자’라는 뜻입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요한복음에서 니고데모에 대해서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바리새인’의 ‘바리새’는 히브리어 ‘파라쉬’로 ‘구별자’, ‘분리자’라는 의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세상과 구별해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변질되어서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사람으로 성경에는
비추어지곤 합니다. 니고데모가 바리새인이었다는 것은 분명 그가 신앙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위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지도자’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르콘(αρχων)’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당시 사용되는 의미는 ‘대제사장’이나, ‘회당장, 산헤드린의원, 재판관’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왕이나, 통치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였습니다. 니고데모가 이렇게 유대인의 지도자였다고 하는 것은 그의 위치가 당시 유대인들의 사회에서 아주 특별한 위치인 산헤드린 의원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산헤드린 의원은 유대인들의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범인을 체포하고 재판하는 권한도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백성의 정복자’라는 그의 이름과 ‘유대인의 지도자’였다는 것으로 보아서 당시 나고데모는 사회적으로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한 밤에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한복음3장2절. 니고데모의 이 말은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 또 다른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보고 ‘이것은 분명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단순한 표현인 것 같지만 이것은 니고데모가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야 대망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며, 구약 성경에 예언된 말씀을 잊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1절-21절의 내용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이루어진 구원에 대한 중요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려고 하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변호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 갔습니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요한복음 19장39절. 이런 니고데모의 행동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구약에 예언된 인류를 구원할 자이심을 믿은 것입니다. 당시 모든 종교 지도자들,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하나 같이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을 보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통달한 사람으로 자부하던 사람입니다.
구약의 말씀에 통달하고, 그 말씀을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을 보고 예수님이 구약의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모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사람들로 추앙을 받고, 거들먹거리는 자신들의 자리였습니다.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같은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 옵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닙니다. 아는 것이 곧, 믿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믿음에는 지적인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내가 아는 것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 깨달은 것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교회만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고 그 말씀대로 살 때에 ‘나는 예수를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를 바로 알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 가는 정말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아 가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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