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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디아스포라의 후예들

작년 크리스마스에 딸이 한글책 세 권을 선물했다. 이민진의 ‘파친코’ 2권과 한강의 ‘흰’이었다. ‘파친코’는 영어 원작의 한국어 번역본이었다.

딸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영문학을 전공했다. 타인종인 사위도 영문학을 공부했다. 사위는 내가 어떤 한국 작가를 좋아하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관심이 많다. 사위는 한국에서 황석영씨도 만났고 이상의 ‘날개’를 읽었으며 작가 한강을 좋아한다. 그런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고른 소설이니 어련하랴.

그러나 나는 바빴다. 집 공사로 1월부터 2월까지 정신이 없었기에 책 읽기를 미루었다. 드디어 공사가 끝나고 집에서 막걸리에 호박전을 놓고 번개팅을 열었다. 모임의 연장자이신 언니가 책장에서 ‘파친코’를 보시고 “줄리, 이 책 읽었어?” 물었다. “어머! 언니, 이 책을 어떻게 아세요? 언니는 정말 놀랍네요!” 80살로 접어드는 언니의 전공은 미술인데 책과 영화, 음악에 밝은, 영화배우 글렌 클로스 같은 지적인 미인이다. 얼마나 독서를 열심히 하는지 그 연세에 새 책을 벌써 다 알고 있다.

작가 이민진은 한인 1.5세다. 1970년에 가족과 뉴욕으로 이민 왔다. 쥐가 나오는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살던 가난한 이민자의 자녀였으나 예일대 역사학과와 조지타운 로스쿨을 졸업한 잘 나가던 변호사였다. 그러다 건강이 나빠져 고교 시절부터 재능을 보였던 글 쓰는 일을 시작했다. 일본계 미국인 남편과 일본에서 4년간 살면서 다양한 취재와 연구를 통해서 소설 ‘파친코’를 완성했다.

‘파친코’는 재일동포 4대에 걸친 대하소설이다. 일본에서 끝없이 손가락질 받는 ‘조선인’의 삶의 투쟁을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마음에 독’을 품고 읽었다. 책 1권과 2권을 이틀 만에 읽었다. 조국을 떠나 사는 이민자이어서겠지만 더 깊게 가슴으로 읽었다.

책 마무리에 12세기 유럽의 사상가 성 빅토르 휴고의 말이 실려있다. “자신의 조국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어디를 가도 자신의 조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두가 다 타국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야말로 완성된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불가피하게 자신의 고향 팔레스타인을 떠나 흩어져 살아야 했다. 이 디아스포라의 행렬은 지금도 끝이 없어 난민들은 희망의 땅을 찾아 어딘가 국경을 통과하려 목숨을 건다.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국경을 넘었을까? 독일에서는 광부와 간호사로, 일본에서는 파친코로, 우리 이민 1세는 민들레 씨앗이 되어 세상 어느 국경도 두려움 없이 넘었다. 나는 이민자로, 내 아이들은 미국 시민으로 작고 노란 꽃처럼 활짝 피었다. 작가의 말처럼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마지막 책장을 넘긴 지금은 새벽 2시. 일기예보대로 비가 쏟아지고 있다. 3월 중순 늦은 겨울비가 내린다. 우리의 인생 여정도 저랬을 것이다. 1.5세 이민자가 쓴 소설을 읽고 나니 지나온 시간이 새벽 겨울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줄리 김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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