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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전생에 나라를 구한 자

창밖을 내다보며 저녁을 먹었다. 건너편 아파트 창안의 여자도 나처럼 혼자 밥을 먹는다. 나를 쳐다본다. 와인잔을 들었다. 그녀도 와인잔을 든다.

옛 생각이 떠오른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어둑해져 가는 저녁 아버지가 혼자 외롭게 식사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몹시 괴로웠다. 하지만 걱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 아니, 이미 아버지 근처에서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서성거리고 있었다는 듯이 젊은 여자가 등장했다. 어찌나 고맙던지. 몸과 마음이 오뉴월에 엿가락 늘어지듯 편했다. 아버지는 여자친구가 떠나면 또 새로운 애인을 만들어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 외로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복싱 글러브처럼 생긴 두툼한 지갑의 무게가 가져다주는 힘이었다.

나는 요즈음 혼자 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친정아버지가 혼자 있는 것은 내 마음이 불편해서 싫었지만, 남편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나 자신이 혼자 있는 것은 왜 이리 좋을까. 내가 꽤 이기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유학 시절처럼 혈혈단신이었다면 외로워서 정처 없이 길을 헤매며 화기애애한 남의 집 창문 안을 기웃거리며 신세 한탄을 하겠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다. 팬더믹으로 우리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화가 남편은 명절이나 기념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토요일 저녁에 왔다가 월요일 새벽에 스튜디오에 가는 것을 고수한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나 하고 싶은 일만 한다. 별일 아닌 것으로 티격태격 열 낼 일도 없다.



“만약 우리 중에 한 사람이 아파 누우면 한 명이 살림해야 하는데 미리 살림하는 것 배워 둬요. 나만 믿지 말고.”

“알았어요. 이 여사.”

주말에 내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가져가긴 하지만, 남편이 살림하는 데 불편하지 않게 스튜디오에 세탁기와 본인이 사고 싶어 하던 50~60년대 우체통을 닮은 빨간색 냉장고 그리고 가전제품 일체를 새로 장만했다.

코로나19가 끝나도 주말부부를 계속하고 싶다. 남편도 그다지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내 생각일까? 확실히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하도 좋아하니까 참아주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도 편하고 홀가분한 것인지를.

‘주말부부가 되다니! 전생에 나라를 구했구나.’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다. 내 까칠한 성격으로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리 없다. 착한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가족의 평안을 위해 부지런히 사찰을 드나들며 정성으로 불공드린 엄마의 염원이 뒤늦게 나에게 와 닿은 것일까?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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