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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잊지 못할 인종차별의 기억

# 학교 선후배 8명이 바다 풍경이 보이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찾았다. 항상 붐비는 곳이라 대기 명단에 인원수와 이름을 올렸다. 점원이 식사를 할 것인지 물어 커피를 마시겠다고 하니 일단 자리가 없어 단체 좌석을 주겠다고 한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앉아 커피와 간단한 디저트를 주문했다. 15분쯤 지났을까, 다른 직원이 오더니 식사 테이블이니 식사 주문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러 왔다고 이미 말했고 안내에 따라 이곳에 앉게 됐다고 했다. 잠시 후 다시 오더니 주문을 더 해야 한다고 해 생각지도 않았던 메뉴와 음료를 추가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고 10여분 후 다시 오더니 식사 주문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옮겨 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옮겨진 자리로 갔는데 2~3인용 미니 테이블 위에 8명이 시킨 커피와 음료, 디저트가 빽빽하게 올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의자는 2개뿐이였다. 매니저에게 안내에 따랐을 뿐인데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 백인이 대부분인 손님들도 무슨 일인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듯했다. 일부는 레스토랑 처사가 너무 했다고 동조하기도 했다. 잠시 후 주방에서 책임자인 듯 한 백인이 나오더니 “너희들 돈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소리쳤다. 당혹스러움에 결국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

# 작은 소도시를 방문해 길거리 주차를 찾던 중이었다. 순간 ‘쿵’ 소리와 함께 차가 흔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대형 클래식 자동차가 후진을 하다가 받은 것이었다. 가해차 운전석에는 백인 노부부가 앉아 있었고 슬금슬금 차를 다시 앞으로 빼는 것이었다. 받힌 곳을 살펴보니 움푹 들어가 있었다. 노부부에게 내 차를 받았다고 말했더니 “그런 일 없다”며 시치미를 뗐다.

마침 순찰차가 지나가서 경관에게 신고했더니 노부부에게 다가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다짜고짜 내 차를 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피해 차량이라고 말했지만 백인 경관은 한 손을 권총 위에 올리고는 "당장 차 빼지 않으면 티켓 발부하겠다"고 경고했다. 깜짝 놀라 주차할 곳을 찾아보는데 경관이 노부부 차를 그냥 보내는 것이었다. 좀 떨어진 곳에 급히 주차하고 사고 현장에 갔더니 순찰차도 떠난 후였다.

#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승객은 한 10여명에 불과했고 아시안은 혼자였다. 보통 앞문으로 타고 뒷문으로 내리지만 손님이 적다 보니 앞문으로 하차를 하고 있었다. 내릴 차례가 돼 준비를 하는데 하차하는 승객이 혼자라 앞문으로 내리려 했다. 순간 그때까지 다른 승객들이 앞문으로 내릴 땐 아무 말 않던 흑인 운전자가 “뒷문으로 내렷”하고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무슨 큰 잘못을 한 듯 창피해 서둘러 뒷문으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1990년대 중반 유학 생활하며 겪은 황당한 일들이다.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을 직접 당해 수십 년 전 일인데도 분하고 모욕감을 느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는 영어도 서툰데다가 모든 것이 낯설어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아시아계 증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16개 주요 도시에서 발생한 아시아계를 향한 욕설과 폭행 등 증오범죄가 150%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한인들 피해도 늘고 있고 ‘한국 사위’로 불리는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도 한국계 부인과 딸들이 모두 차별을 느꼈다며 아시아계 증오 범죄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언제 어디서든 증오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차별이나 증오범죄라고 느껴지면 침착하게 스마트폰으로 최대한 현장 상황을 기록해 경찰에 신고하는 등 적극 대응해야 할 때다.

영어가 서툴다고, 힘이 없다고 그냥 당하고만 있으면 수십 년이 지나도 혼자만이 기억하는 모욕적인 해프닝으로 남게 될 뿐이다.


박낙희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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