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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목사 목회칼럼] 그대여 변하지 마오!

영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s man.”) 영화 속 주인공 해리 하트(콜린 퍼스 역)가 불량배들을 혼내주기 위해 문을 걸어 잠그면서 한 명대사다. 흥분하면 물불 안가리는 사람들과 달리 클래식한 정장 차림에 차분하고 절도있는 행동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매너없는 불량배들과는 격이 다른 모습이었다.

비슷한 의미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사회 생활에서 갖게 되는 자리마다 책임과 의무가 있고 격식이 있다. 누구나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익숙해지고 성장하게 된다. 그에 걸맞는 직급이 생기고, 직급이 올라갈 수록 책임의 무게와 권한은 커진다. 사람에 따라 기대 이상의 책임감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임과 의무는 뒤로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이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의 긍정적인 면은 줄반장이라도 시켜줬더니 전에 없던 능력이 발휘되는 경우이고, 부정적인 면은 선하고 예의 바르던 사람이 권력의 맛을 알고 돌변하여 파렴치한이 되는 경우이다.

최근에는 후자의 경우와 같이 부정적 의미로 대부분 쓰인다. 책임과 의무를 위한 권한을 권력으로 착각하고 그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으다)도 마다하지 않는다. 작년 말, 한국에서 드라마 “팬트하우스”가 화제가 되었다. 상위 1%가 되기 위해 불륜과 이혼, 살인도 마다 않는 소위 ‘막장’ 드라마였다. 부모의 계급(?)과 재정상태에 따라 자녀들의 서열이 정해지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상황에 따라 서열이 달라지면, 주종관계(?)가 뒤바껴 그동안의 설움을 앙갚음하기도 한다.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을 일부 반영하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씁쓸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그리스도인은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첫째로 그 자리는 영원한 자리가 아니며, 둘째는 내 힘으로 오른 자리가 아니라 은혜로 받은 자리이기 때문이고, 셋째는 어디를 가든 겸손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고 하셨다. ‘자기부인’은 내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기 때문(갈 2:20)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의미보다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하는 삶에 무게중심이 있다. 예수님을 믿음에 있어 우리에게 맡기신 일, 받은 사명,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하다 보면 힘들 때도 있고 고난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참고 해야 하는 일이 내게 맡기신 나의 십자가다.

그리스도인은 어디를 가든지, 어느 자리에 있든지,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환경이 나쁜지 좋은지 중요하지 않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라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다. 죽은 후에만 갈 수 있는 천국이 아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내가 주와 함께 하고 있다면 그 자리가 천국이고 오늘이 천국에서의 하루가 된다. 환경이 풍요롭든지 척박 하든지, 좋든지 나쁘든지, 내가 있는 그 자리를 천국으로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비록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변화는 아닐지라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쉼과 열정을 공급하는 사람이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신 동안 그러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사람이지, 환경이나 자리에 따라 변질되면 안된다.

나는 국물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특히 설렁탕이나 곰탕 같은 진한 국물 음식을 좋아한다.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교회 구역모임이나 기도원에 가시고 집에 계시지 않는 때가 종종 있었다. 몸이 약했던 아들 끼니라도 거를까봐 밤새도록 끓여 놓은 사골을 우려내고 또 우려내서 냉장고에 넣어 두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 당시 우리 집에 머물던 사촌 누나가 뜨겁게 덥혀 밥을 말아 주었다. 뜨거운 국밥에 깍두기 하나 아삭 베어 물면 온 세상을 다 먹은 느낌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몸에 밴 아재 입맛 때문일까? 사람을 대할 때도 진국인 사람이 좋다. 변하지 않는 관계를 그리워한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에 변해도 변함없는 관계, 의리, 그리고 사랑, 자리가 변하고 서로 사회적 위치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관계가 그립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려운가 보다. 자신의 욕심과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는 내가 깨닫든지, 상대가 변하든지, 언제고 깨지고 만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한결같은 사랑이다. 상황에 따라 내가 주님을 가까이, 혹은 멀리 해도, 우리를 향하신 사랑은 영원하다. 죄로 인해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넘어진 김에 주님을 멀리하려는 마음,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하는 생각으로 포기하게 만드는 마음은 마귀가 주는 생각이다.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내가 넘어지고 쓰러진 순간에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 곁에 계신다. 그리고 손 내밀어 주님 손을 붙잡기를 기다리신다.

세상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 중에 변질된 사람이라도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가지진 않았으리라 믿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우리가 선 자리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예수님을 모시고 동행한 자리다. 그 자리는 그리스도인의 자리, 하나님의 자녀 된 자리다. 있는 자리에서 부정적 의미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란다. 상황에 따라 기회를 엿보지 말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자리에 올라 전에 없던 성령의 능력을 행하며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대여, 변하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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