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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우연한 발견

도서관에서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하고 책꽂이마다 돌아다니며 책을 뒤적이는 사람은 요사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목표로 검색 엔진에 몇 가지 핵심단어를 입력하면 여기저기에서 정확히 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효율적이지만 지루하다. 나는 책 제목이 흥미롭기 때문에 책을 빌린 적이 많이 있다. 좋아하는 내용이 아니라 반환하러 가서 또 다른 책을 고른다. 시간을 들여 이 책 저 책 들여다본다. 그러는 와중에 모르던 작가를 발견하게 되고 그의 글을 좋아하게 된다. 우연히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은 무료한 일상생활에 마법처럼 빛나는 순간이다.

70년대 초, 뉴욕에 도착한 지 채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맨해튼 다운타운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의 작은 은행에서 일할 때 일어난 에피소드이다. 당시에 나는 거액의 금액을 은행과 은행 간에 서로 상환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전화 속에서 들려오는 강한 일본인 엑센트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고 만나서 확인하고 싶었다. 근무하는 곳이 어디냐고 대뜸 물었다. 다행히 내가 일하는 바로 옆 블록이었다. 점심시간에 건물 앞에서 젊은 일본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일은 잘 처리되었다. 그 이후로 아침 커피를 사기 위해 Chock full O’Nuts 커피숍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때 가끔 그와 부딪치곤 했다. 그러면 오랜 지기라도 만난 듯 우리는 서로 두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생스러운 경험이었지만 낭비는 아니었다. 예기치도 못했던 행동들은 나를 키우고 단단하게 했다. 어쩌면 내 계획이 패배할 수도 있었고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해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상자에서 무엇을 발견하는 듯한 그 시간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했고 의미 있게 했다. 당시 나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었고 무척 바빴다. 남편과 함께 아무 계획도 없이 길을 갔고 겁이 났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우연히 무엇을 발견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돌이켜 생각해 본다. 지금처럼 무엇이든 척척 해결해 주는 아이폰이 있었다면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PC가 나오기 전 까마득한 그 옛일이, 그런 시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살아오는 지금, 갑자기 열풍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능력보다는 인간 진실에 더 가까운 삶이었기 때문이리라.



수년 전 큰 정원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신문을 기다리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매일 아침 배달되는 뉴욕타임스는 드라이브 웨이에서 비에 젖기도 하고 눈에 덮이기도 했다. 강아지가 물어뜯어 찢어질 때도 있었다. 젖은 신문을 말려가면서 찢어진 신문 조각을 이어가며 조심조심 뒤적이다 보면 스포츠 섹션 또는 사망 기사, 정치 이야기 등 내가 관심이 없는 기사를 읽게 되고 계획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은 작은 콘도에 살면서 온라인으로 신문을 본다. 간편하고 깨끗하고 마침표를 찍은 듯 속 시원하다. 그러나 왠지 마음이 아파져 온다. 시려 온다. 테크놀로지로 신속하고 효율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일회용 시대에 우연히 무엇인가를 발견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일종의 예술이다. 지금까지 그 경험을 복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춘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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