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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흑인 희화화 음악 ‘연주 금지’

우리의 귀는 보통 ‘길고 짧음’을 안정적이라고 느낀다. 긴 음 다음에 짧은 음이 오는 리듬이다. ‘따안’하는 긴 음, 그 다음에 ‘딴’하는 짧은 음이 와야 균형이 맞게 들린다. 중요한 이야기를 앞에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대뜸 짧은 음부터 나오면 불안하다.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가 1908년 발표한 ‘골리워그(Golliwogg)의 케이크 워크’라는 피아노 곡은 이런 불안한 리듬 투성이다. 아예 처음부터 절뚝거리며 시작해서, 기우뚱거리는 리듬을 반복한다. 골리워그는 흑인의 모습을 희화화한 인형 이름이다. 드뷔시는 내친김에 ‘짧고 긴’ 리듬을 한 곡 더 썼다. 1909년 작품 ‘작은 흑인(Le Petite Negre)’이다. 드뷔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00년대 초 파리에는 미국의 흑인 공연단이 무대에 섰고, 드뷔시는 여기에서 ‘케이크 워크’라는 춤을 처음 봤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노예 시대에 흑인의 댄스 경연대회에서 유래한 춤이다. 케이크는 상품이었고, 춤은 ‘짧고 긴’ 리듬을 중심으로 한다.

드뷔시는 프랑스를 넘어 러시아는 물론 동양 문화 같은 이국적 정서에 관심이 많았고, 흑인 공연단의 춤을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강조해 음악으로 만들었다. 이 곡은 지금도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앙코르로 선택하고,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도 단골로 연주한다.



그런데 최근 뉴욕의 한 음악학교에서 이 곡을 금지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영국 음악 칼럼니스트인 노먼 레브레히트가 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뉴욕의 스페셜 뮤직 스쿨이 드뷔시의 두 작품을 과제곡으로 내거나 연주하지 않도록 결정했다”고 전했다. ‘골리워그의 케이크 워크’와 ‘작은 흑인’이다.

그런데 이 결정이 맞을까? 레브레히트의 포스트에 댓글이 뜨겁다. “당시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결정”이라는 비판, 정치적 올바름이 과도한 결과라는 의견도 있다. 또는 “그 곡을 어린 아이들을 모아놓고 연주해도 좋겠느냐”는 지지 댓글도 있었다.

드뷔시는 타인의 문화를 열린 눈으로 바라본 모더니스트였다. 하지만 시각의 틀까지 개조할 생각은 없었다. 파리지앵이 본 흑인의 춤은 더욱 노골적으로 흑인다워야 했고, 보다 독특해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 인종에 대한 획일적 묘사가 일어난다. 드뷔시의 ‘민스트렐’0)과 ‘괴짜 라빈 장군’에서도 흑인 공연단과 서커스 단원을 이색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짧고 긴’ 리듬이 등장한다. 한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이 굳어져간다.

이 작품들을 2021년의 청중이 즐겁게 듣는 풍경은 이상하다. 다른 인종이 더 이상 이색적이지 않은 시대이므로. 강압적인 ‘연주 금지’ 또한 옳지 않겠지만 적어도 교육기관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예술은 예술이니까’하고 넘어가기에는 예술이 우리의 무의식에 끼치는 영향이 무척 강렬하다.


김호정 / 한국 중앙일보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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