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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앤 테크놀로지] 화석연료와 현대미술

끌로드 모네, 노르망디발 기차의 도착, 생라자르 역, 1877, 캔버스에 유화, 60.3 x 80.2cm,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 사진 구글 아트 프로젝트

끌로드 모네, 노르망디발 기차의 도착, 생라자르 역, 1877, 캔버스에 유화, 60.3 x 80.2cm,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 사진 구글 아트 프로젝트

화석연료의 시대는 끝나간다고 말한 것이 어언 50년이다. 1970년대 오일 쇼크의 여파로 미래학자들은 전기 자동차와 태양광 발전의 시대를 예견했다.

17세기 네덜란드 해양풍경화에 흔히 등장하는 커다란 돛의 화물선은 바람과 인간의 노동으로 움직였다. 노를 젓거나 해풍과 조류를 타고 수천 마일을 여행하여 네덜란드에서 동남아시아로,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다녔다. 해양풍경화의 전통은 19세기에 이어졌다. 프랑스 화가 끌로드 모네(1840~1926)가 자주 그린 노르망디 지방 르아브르(Le Havre)에 나오는 커다란 배들은 석탄을 연료로 이용한 증기선이었다. 기차가 증기엔진으로 다니듯이 거대한 상선들도 증기기관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가로 질렀다. 모네의 1872년 작품 ‘해돋이: 인상’은 1874년 단체전에 출품되었다. 비평가들은 그림의 소재가 된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상선, 기중기, 크레인 등 보다는 무질서하면서도 파격적인 물감의 사용을 비난하면서 함께 전시한 피사로, 르누아르, 드가 등의 화가들을 함께 ‘인상주의’라고 부르게 된다.

인상주의 그룹의 화가들은 증기선, 증기기관차, 연기로 가득한 기차역 등을 자주 그렸다. 1848년에 백만명이던 파리의 인구는 1870년 두 배인 이백만명이 되었다. 프랑스 작가 보들레르는 1863년 ‘모던 라이프를 그리는 화가(Painter of Modern Life)’라는 에세이를 발표하여 젊은 미술가들이 어떻게 급격히 변해가는 모던 라이프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촉구하였다.

1840년 태어난 모네와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은 1842년부터 등장한 증기기관차 등이 불러온 삶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편리함을 누렸다. 그들이 함께 주말 여가를 즐기던 아르장퇴이유, 그르누이유, 지베르니(루앙 근처) 등은 생 라자르 역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내외로 쉽게 갈 수 있는 세느강 하류의 휴양지였다. 인상주의자들 그림에 흔히 나오는 야외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강가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멋쟁이 파리지앵들은 이처럼 증기기관차가 가져온 편리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화석 연료의 개발과 증기 엔진으로 크나큰 부를 창출한 사람들은 17~18세기 영국 귀족들의 여유로운 문화 여행(Grand Tour)의 전통을 이어받아 영국, 프랑스 등의 기업가들은 이탈리아로, 미국의 기업가들은 유럽으로 장기 여행을 떠나곤 했다. 이때가 네덜란드 화가 휴벗 보스가 하와이를 거쳐서 일본, 한국을 방문하고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일가 민 씨 형제들의 유화 초상화를 그리던 바로 그 시절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헨리 포드의 모델 T 자동차가 1908년 선보이고 보편적인 제조 형태를 확립하여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처럼 마차를 대신하게 되었다. 석탄에서 정제된 가솔린으로 기차 및 자동차의 연료가 바뀌면서 록펠러가 세운 스탠다드 오일 회사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1914년 존 피어폰트 모건(1837~1914)이 사망했을 때 모건의 뒤를 이어 가장 강력한 미술품 컬렉터가 된 것은 젊은 백만장자 록펠러 주니어(1874~1960)였다. 미국의 철도건설을 통해 막대한 투자 이윤을 축적한 그의 금융회사는 아직도 건재하지만 모건 개인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서양문명의 기원이 되는 각종 미술품 수집 및 학술 사업에 쏟아붓고 세상을 떠났다. 모건의 고객이었던 헨리 클레이 프릭(1849~1919)은 카네기 철강 회사의 회장을 역임하고 미국의 유에스 철강 회사의 근간을 마련하였는데 자동차, 동영상 카메라 등의 테크놀로지 열광 팬이었다.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미술품과 함께 각종 자동차 모델도 많이 사들였다.

록펠러의 아버지 록펠러 시니어(1839~1937)는 화가 모네와 거의 동시대인이었지만 미술 등 문화에 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록펠러 주니어 역시 동시대 현대미술작가들보다는 중세 유럽 혹은 아시아 고대 미술 등에 더욱 열정을 보였다.

스탠다드 오일은 현재 엑슨 모빌(Exxon Mobil)이라는 상호로 여전히 원유 및 가스 등의 화석연료 공급의 가장 큰 회사로 남아있다. 1918년 창간하여 백 년 가까이 발행한 회사 잡지 램프(The Lamp)는 회사의 내부 유통을 주로 하다가 1940년대부터 동시대 사실주의 화가들에게 표지 그림을 주문하고 15만 달러 정도의 파격적인 예산을 책정하였다. 2017년 마지막 호를 발행한 램프는 피터 헬크(Peter Helck, 1893~1988)와 같은 삽화가에게 사실주의적인 풍경화 혹은 인물화 등을 맡겼다. 1950년대에는 일반 독자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교양 잡지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석 연료 회사들은 막대한 규모의 부를 바탕으로 하여 자선 및 문화사업 전반에 기부하지만 동시대 미술가들에게는 눈에 띄는 관심이나 후원을 하지 않는다. 독점적 기업이므로 경쟁사들보다 문화적, 대중적 인지도를 향상할 동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석 연료 회사들은 아직도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이윤을 가져다준다. 또한 게티 오일, 스탠다드 오일 등의 창업자 가족들은 개인적으로 미술품 수집 및 현대미술 작가의 후원에 나서고 있다. 록펠러 가문이 세운 아시아 문화 위원회(Asian Cultural Council)은 인도, 중국, 일본 및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의 미국 방문 및 국제 교류전을 후원해 왔다. 1963년에 설립되어 6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한국의 문화예술 전문 인력들의 미국 대학원 진학을 도왔고 백남준, 김환기 등을 비롯한 작가들을 후원하였다. 현대미술의 발전에 화석 연료의 이윤이 결코 적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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