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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미술이 시간을 담는 법

조영남이 불러서 널리 알려진 노래 ‘모란동백’의 작사 작곡자는 소설가이며 시인이자 화가이기도 한 이제하씨다. 이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는데 수줍은 듯 서투른 노래 솜씨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준다. 조영남의 노래에 비하면 한결 소박하고 절절하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꽃이 다 져버리고 없는 쓸쓸한 풍경을 그린 첫 구절이 처연한 느낌을 준다. 인생 노년의 덧없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어떤 젊은 가수가 이 구절을 “모란은 벌써 지고 있는데…”로 바꿔 부르는 것을 들었다. 느낌이 확 달라졌다. “지고 없는데…”와 “지고 있는데…”는 글자 한 자가 달라졌을 뿐인데 이렇게 느낌이 달라지다니.

“지고 없는데…”는 과거완료형이지만 “지고 있는데…”는 현재진행형이다. 화려하던 꽃이 하나 하나 떨어지고 있는 장면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꽃이 다 져버린 쓸쓸함보다 떨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처연함이 한결 가슴을 때린다.

이건 글이니까 가능한 매력이다. 글자 하나 바꾸는 것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

미술에서는 어떨까. 그림에서도 이런 극적인 전환이 가능할까. 그림에서는 과거완료형을 어떻게 맛깔나게 구별해서 표현할 수 있을까. 시간의 표현을 통해 처연함을 다른 강도로 노래할 수 있을까. 공간 예술인 미술에서 시간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는 오랜 숙제였다. 많은 화가들이 시간을 그림으로 그리려 시도했다.

미술을 제외한 모든 예술은 시간예술이다. 문학, 음악, 연극, 영화 등 모두 그렇다. 시간예술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이야기를 전개하며 감정을 점진적으로 끌어올려 정점에서 폭발시켜 감동을 불러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른바 기승전결의 구조다.

그런데 그림은 그것을 단 하나의 장면으로 집약하여 입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러니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가장 흔한 방법은 시간적으로 전개되는 여러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한 화면에 그리는 것이다. 역사적인 장면을 기록한 그림에서 흔히 쓰이는 방법이다. 화가 뭉크는 이런 방법을 자기 식으로 활용해, 소녀 때부터 청춘기, 장년기를 거쳐 노년기에 이르는 인생의 모습을 한 화면에 담은 작품을 여러 점 그렸다. 사람의 일생을 집약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시간을 미술로 표현하려고 가장 적극적으로 시도한 것은 미래파 화가들이다. 마르셀 뒤상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가 그런 그림의 대표작이다.

하지만, 그림이라는 고정된 공간에 흘러가는 시간을 담으려는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만화나 영화 같은 새로운 예술이 개발되었고, 요새 젊은 작가들이 즐겨하는 미디어 아트나 퍼포먼스도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인류의 긴 역사를 지배해 왔고, 오늘날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단 하나의 장면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미술만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시간을 초월한 영혼의 세계를 그릴 수도 있고, 세월의 향기를 진하게 담을 수도 있다. 미술은 시간을 포용한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이를테면, 고흐의 ‘낡은 구두 한 켤레’처럼 별 다른 설명 없이도 삶의 깊이와 냄새를 느끼게 해주는 그런 그림….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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