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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짝사랑 작사 첫사랑 작곡

“아직도 가슴이 떨리고
양 볼이 발그레 물 든다면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음성이 나를 설레게 한다.
표정이 작게 이야기 한다
작은 배려가 나를 감동시킨다”

 쿵쿵, 두두근 두두근, 콩닥콩닥, 경고도 없이 예고도 없이 내 심장이 내게 전해주는 신호다. 더 다양하게 보내오는 소리가 감지되면, 어이없어 난처한 표정만 지으며 지켜보기 여러 번. 끝내 찾아 내지 못한 이유를 더듬다가 급기야 죽을 병에 걸렸나로 마침표를 짓는다.

 몇 번이나 이런 증세를 경험했었나. 아직도 가슴이 떨리고 양 볼이 발그레 물 드는 경우가 있다면, 그 자체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어떤 음성이 나를 설레게 한다. 어떤 표정이 나에게 작게 이야기 한다. 어떤 배려 한 조각이 나를 감동시킨다. 고마움이 살며시 물결치면 그만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제일 처음 이성을 좋아 했던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 급장 아이를 엄청 좋아했다. 또래보다 비교적 큰 키에 잘 생긴 얼굴, 무엇보다 순둥순둥 조용한 성격이 나를 묶어 버렸다. 그 애도 나도 왜 반장, 부반장이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1학년 꼬마들에게 민주적 투표를 시켰었는지, 그냥 담임이 임명을 했었는지 알 길이 없다.

 같이 짝이 된 것도 아니다. 어디쯤 멀리 떨어져 앉았었는지도 기억에 없다. 딱 한 장면 투명하게 기억난다. 방과 후 청소 시간이다. 빗자루를 보관해 두는 곳이 마루 한 귀퉁이를 열고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 오래된 몽당비는 잘 쓸리지 않아서 불편하다. 용케도 새것 수수 빗자루가 몇 개 있다. 잽싸게 마루 뚜껑 열고 들어가 새 빗자루를 차지해야 청소가 쉽다.

 매번 후다닥 달려가 빼앗듯 새 빗자루를 차지하는 일보다 청소 끝난 후 어딘가에 숨겨 두는 편이 확실하게 내 전용으로 만든다는 이치를 깨달은 건, 반장이 아니라 나다.

 날마다 청소를 하는 건 아니었을 터다. 분단으로 나뉘어 있으니 순번대로 돌아가며 청소를 했을 텐데 그런 건 다 모른다. 얼마나 자주 반장과 내가 그 마루 밑으로 내려가 앉은뱅이 걸음으로 컴컴한 구석 커다란 기둥 뒤에 빗자루 두 개를 숨겨 두고 들락거렸는지도 기억에 없다.

 절대 혼자가 아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이 들어가면 큰 기둥 뒤에 있는 빗자루를 꺼내기 전, 둘이 쪼그리고 앉아서 한 동안 숨을 죽인다. 청소 전이었는지, 청소 후였는지도 기억해 낼 수 없지만, 바로 그 때가 내 가슴이 콩닥거리던 순간이었음은 기억난다.

 그 시간이 있어 청소시간을 종일 기다렸었는지도 생각 안 난다. 몇 번이나 그랬는지도 모른다. 둘이 손을 잡았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 기억도 없다. 오래 그러고 있고 싶어했다. 누가 먼저 이젠 그만 나가자고 했는지도 까맣다. 지금도 그 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뛴다.

 2학년 되면서 주일이와 난 딴 반으로 나뉘었다. 6학년까지 다시 한 반이 되어 만나지 못 했고 교실 밖이나 학교 밖에서 그 애를 만났던 기억도 없다. 어쩌면 궁금해 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까맣게 색칠된 시간들 속에 서울 청계국민학교를 졸업했다.

 가끔 중간에 전학가는 아이도 있더구만 난 6년을 꾸준히 다니고 졸업했다. 서울사대부중에 입학하고 어떤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었는지 주일이가 1차에 실패했다는 소문을 스쳐 들었지만 확인할 마음도 방법도 없었던지, 그렇게 잊혀진 내 첫 짝사랑 김주일이다.

 남녀 각 세 반씩 떨어져 공존하던 중학 생활 중에도 특별히 주일이를 생각했던 기억은 없다. 보고 싶었다면 같은 학교 다니던 초등학교 때 만났어야지 어느 중학교에 입학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를 새삼스레 생각하고 그러기엔 너무 어릴 때 만남 때문이었으리라.

 중학교 2학년 어느 따스한 봄날이었나? 마침 사범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교생 실습 중이었다. 역사과 졸업반 김건흡 선생님과 함께, 방과 후 귀갓길이다. 동대문에서 을지로 6가를 향해 가던 길, 청계천을 통과하던 중이다. 북적이는 인파로 교생 선생님과 제법 어깨가 스치는 거리로 무슨 얘긴지 유쾌하게 떠들며 걷고 있었다.

 순간 인파를 뚫고 재빠르게 내 앞을 가로 막은 물체. 내 눈에 확 들어 온 흰 교복 상의에 붙어 있는 명찰. 김주일. 얼굴도 안 봤다. 단지 명찰만을 내 눈앞에 들이대 놓았다. 옛날 초등학교 마루 밑에 보이던 커다란 기둥의 밑동이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른 듯 지나는 나를 가로 막고 우뚝 멈춰 섰다.

 옆에 걷고 있던 교생 선생님도 인지 못하던 순간으로 난 그 아이를 살짝 피해 계속 걸었다. 아무 생각도 못 한 채 머릿속이 까맣게 불이 꺼져 있었다.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난 그 날을 빤히 보고 있다. 어쩜 짝사랑이 아닌 나의 첫사랑이었나 의심이 든다. 보고 싶어진다. 만날 순 없을까? 1959년 청계초등교 졸업 김주일.


노기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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