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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그 집

길가 축대를 오르다 말고 담쟁이가 물들어 가고 있었다. 석양이 비껴가는 넝쿨 끝에서 이 계절을 기억해둬, 기억해 두라구!// (…) 인간은 자기 집을 소유할 권리가 있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가르쳐준 집, 빛에 몰려 급히 팔아버린, 매매계약서에 도장 꽝, 찍고는 다시는 안 보려고 멀리 돌아 지나다니던 담쟁이의 집.

-최정례 시인의 ‘담쟁이의 집’ 부분

글이나 그림을 보고 공감한다는 건 뭘까. 인지적 혹은 감정적 공감은 경험된 어떤 기억의 파장이 일치할 때 일어나는 마음의 떨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험의 용량에 따라 공감 능력의 범위가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한다.

어떤 시는 읽으면서 격조 있는 은유에 압도되어 공감 이상의 매력에 빠진다. 어떤 시는 상상력의 층위가 우월해 경이로움을 준다. 그리고 어떤 시는 경험이 지닌 공감대의 일치로 마음 아리게 읽히기도 한다.



집을 잃어본 경험 때문일까 ‘다시는 안 보려고 멀리 돌아다니던’ 시인의 마음을 덥석 받아 안고 싶어졌다. 그 허탄한 마음을 식탁에 앉히고 따뜻한 차를 내놓으며 손을 잡아주고 싶어졌다.

개나리가 피는 때가 되면 기웃거리게 되는 집이 있다. 먼발치에서 전에 살던 집 뒤란을 기웃거리는 모습은 아무래도 무인함이다. 담 삼아 심어 놓은 개나리가 노란 꽃을 피우며 봄을 알리던 그 집, 막내의 어린 시절 웃음소리가 배어 있는 그 집.

집이란 사는 사람들의 추억이 스며있는 곳이다. 더군다나 누군가의 유년시절을 움켜쥐고 있는 집이라면 어떤 가치로도 환산이 어려운 귀중한 장소이다. 한 가족이 형성되어가는 데에 집의 역할보다 큰 게 없다. 추억은 가족이 연대하는 끈이다. 그래서 추억이 쌓여있는 집은 무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자산이다. 그래서 집이 부동산 가격으로써의 가치보다 풍요로운 마음의 자산으로써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믿는 터다.

불어오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추억을 묻어 둔 채 집을 떠나야 했을 때, 뒤란의 개나리는 꽃을 피웠다. 개나리는 고향의 꽃같이 정답고 무리 지어 피는 게 좋아 많이 심었다. 떠나는 자의 심사는 아랑곳없이 꽃은 흐드러졌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몇 번이나 집을 옮기게 될까.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적잖이 이사를 다녔다. 어떤 집도 애틋하지 않은 집은 없다. 그 시절, 시절마다 이야기가 있고 돌이키고 싶은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히 아린 손가락이 있듯이 더 마음이 가는 집이 있다. 아마도 추억이 많은 집일 것이다.

좋은 집이란 이야기가 많은 집이다. 집이 품고 있는 기억 속에는 행복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불행이나 아픔까지도 용해해 온기가 되게 하는 곳, 불협화음을 조율해 하모니를 이루던 공간이어서 집은 삶의 요람인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다 알고 있는 집이라면 추억의 보물창고다. 아이들의 유년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집은 그 시절을 호출해 내며 수시로 말을 걸기도 한다.

천정이 높던 그 집, 막내의 비밀을 숨겨주던 다락방이 있던 집, 창이 넓어 아침 해가 유난히 눈 부시던 그 집, 이 봄에도 개나리가 활짝 피면 나는 또 한 번쯤은 그 집 뒤란을 서성거릴 것 같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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