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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닥터 김선희 원장을 추모하며

“닥터 김선희 코스모 원장님이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이 말에 죽은 자의 옷을 입고 사는 나는 가슴 시리게 부끄러웠다.

이민 초기, 우리는 라면 상자에 보자기를 덮고 밥을 먹었다. 건강 보험이 있을 리 없었고, 돈도 없었다. 누가 어디에 살며 숟가락이 몇 개인지 그 시절 우리는 다 알고 살았다. 몸이 아파도 큰 병원 문을 두드릴 용기도 돈도 없었다.

김선희 원장님의 코스모 병원은 이민자들의 유일한 종합병원이었다. 전화 한 통화면 웃으시며 “지금, 오라”시던 그 다정한 목소리….

뷰포드 하이웨이에 있는 코스모 병원을 지날 때마다 허술한 옷차림으로 건강보험이 없는 가난한 이들을 하루 백여 명이 넘게 진료했다.

이제는 은퇴하고 쉴만한 연세였지만, 그는 쉬지 않았다. 아시안 커뮤니티의 음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는 ‘슈바이처’ 였다.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까지도 돈 없고, 영주권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셨다.

닥터 김을 생각하면 늘 한 식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였을까. 더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전문의사들이 많아도 닥터 김이 있던 그곳이 편했다. 그래서 가끔 코스모를 찾아가곤 했다. 닥터 김의 따뜻한 마음이 보고 싶고,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이민자의 외로움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 버려지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였던 김선희 원장. 그가 떠나고 없는 애틀랜타는 너무 쓸쓸하고 아프다. 김 원장이 떠난 뒤 코스모 병원 앞을 서성일 수많은 외로움이 벌써 보인다.

김선의 원장은 환자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치유하는 참모습을 보여줬다.

그가 남기고 싶은 유언을 무엇이었을까….

“아직 죽지 않는 사람으로 살지 말라,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삶이다.”

아마도 ‘잠시 빌려 사는 목숨을 담보로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했을 것 같다.

“김선희 원장님, 당신은 죽지 않으셨습니다. 은하수 꽃길에 한 마리나비 되어 춤추러 가셨습니다. 지상에 산다는 것은 나비가 되기 전 영혼을 감싸는 작은 번데기였음을. 산다는 것은 행복하라는 것 외엔 다른 의미가 없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가셨습니다.”

‘내 인생길 참 아름다운 소풍이었다, 노을이 아름다운 은하수 꽃길에 나 춤추러 가요.“라고 이야기한 시인 천상병의 시처럼.

”닥터, 김선희 원장님, 당신과 더불어 살았던 애틀랜타는 행복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고이 잠드소서…“



박경자 / 전 나라사랑어머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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