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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시래기찌개

며칠 전 선배님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무 시래기를 한 봉지 주셨습니다. 깨끗하게 씻어서 투명한 봉지에 싼 고급스러운선물이었습니다. 사실 시래기는 아주 값싼 음식이었습니다. 가을에 무를 수확하고서 무 꼭대기의 무청을 그냥 잘라버리거나 토끼 먹이로 주는데 그 시래기를 말리거나 큰 솥에 삶아서 말리면 초겨울의 추운 날씨에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면서 말려집니다.

그 시래기는 겨울에 된장국이나 찌개에 넣어서 먹는데 음식 중에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농담에도 빌빌거리는 사람에게 “야, 시래기 죽을 먹었냐. 왜 비실비실하냐” 하고 기운이 없는 사람보고 “사흘에 시래기 죽도 못 먹었냐, 왜 기운을 못 쓰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래기는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이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시래기 죽을 먹은 경험이 있습니다. 시래기 된장국에 쌀을 약간 넣어 끓인 죽인 데거무틱틱한 것이 맛이 없는 음식이었습니다. 아버님이 은퇴하시고 정말 가난할 때였습니다. 11월 초순경에 한남동 나룻배를 타고 잠실에 가셔서 무밭에서 일하셨습니다. 무를 뽑고 다듬어 주고는 무에 달렸던 무청을 얻어 오는 일이었습니다. 며칠을 가셔서 일하시면 마당에 무 시래기가 무더기로 쌓이고 어머님은 그것을 다듬어서 말리기도 하고 무청 김치를 담그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의 겨울 양식이었습니다. 이 무청 김치는 웬만한 집의 김장 김치보다도 맛이 있었습니다. 시래기를 볶아 먹기도 하고 쪄서 무쳐 먹기도 했지만 역시 시래깃국이나시래기찌개를 많이 해 먹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시래기를 먹어볼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간혹 식당에 가면 반찬으로 내놓는 시래기찌개가 있었지만 별로 맛있게 먹는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무를 사기도 쉽지 않은데 시래기를 먹는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래기라는 존재를 까맣게 잊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선배님이 깨끗하게 씻어서 말린 시래기 그리고 고급스럽게 포장이 된 시래기를 한 봉지 주신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시래기 봉지를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마치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다 놓고 요놈을 어떻게 요리를 할까 하는 심정으로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래도 눈에 익은 된장찌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런 귀한 식재료를 아내에게만 맡겨둘 수 없어 나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이것을 흐르는 물에 잘 씻어 쌀뜨물에 담가 놓았다가 한번 삶아 냈습니다. 다른 냄비에 중간치 멸치를 좀 볶다가 물을 좀 넣고 시래기를 넣었습니다. 거기에 토종 된장과 일본 미소 된장을 섞어서 풀어 넣고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마늘 다진 것, 파, 양파 조금 썰어 넣고 고춧가루 약간 뿌렸습니다. 그리고는 손맛이라고 아내를 속이려고 땅콩을 몇 개 절구에 갈아 넣었습니다. 나중에 한창 끓을 때 미원을 약간 넣었더니 역시 맛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미국에서 자란 딸은 약키 하고 냄새도 싫다고 했으나 아내와 나는 밥 위에 얹어가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헤어졌던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갑자기 어머님이 생각이 나면서 목구멍이 조여 왔습니다. 아내는 “소고기보다 귀한 시래기네요. 소고기는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시래기를 어디서 구하겠어요. 참 오래간만에 먹는 별미예요”라고 좋아했습니다. 나는 “사람은 출신 성분은 못 속인다니까, 어디 가서 양반 출신이라고 거짓말은 못 하지”라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이용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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