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대표가 만난 사람] <4> 리 장의사’ 이국자 대표
“100세 시대라지만 모두가 100살 사는 것은 아니다”
22년째 장례식장 운영해 온 ‘죽음 전문가’
곁에 있는데도 ‘나와는 무관하다’가 문제
화장시설까지 갖춰 타인종도 많이 찾아
불교 경전 ‘법구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걸음마를 시작하던 아이가 갑자기 죽었다. 비통에 빠진 엄마는 아이를 되살릴 약을 찾아다니다 붓다에게까지 나아갔다. 붓다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을 찾아가 겨자씨 한 줌만 얻어오면 아들을 살릴 수 있다.” 여인은 기뻐하며 그 약을 찾아 나섰지만 곧 알게 됐다. 세상에 그런 집은 없다는 것을.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죽음은 순서가 없다. 부자와 빈자, 높은 자 낮은 자,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가리지 않는다. 천하의 진시황도 불로초는 구하지 못했다. 삶이 한 번뿐이 듯 죽음도 연습이 없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고,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죽음. 가 보지 않은 길이어서 무섭고, 자신이 관여해 온 모든 관계와 소유로부터 격리되는 절대 고독의 세계라 더 두렵다.
그렇지만 죽음은 현실이다. 날마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듣고 접하며 산다. 매 순간 어디에선가는 고인을 보내는 장례 의식도 치러진다. 지난 달 25일 애틀랜타 한인 사회 대표적 장례업체인 ‘리 장의사(Lee’s Funeral Home & Crematory)‘ 이국자 대표를 만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닙니다. 저희는 평소 때와 비슷합니다.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운영만 힘들어졌어요. 장례 절차가 간소화되고 유가족들이 문상객도 받지 못하잖아요. 당연히 장례에 지출하는 비용도 줄었습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코로나 희생자가 그렇게 많다는데, 장례식장이 불황(?)이라니. 말은 그랬지만 인터뷰 당일 이국자 대표는 무척 바빴다. 한 시간 남짓의 만남이었지만 대화는 몇 분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끊기곤 했다. 두 개의 전화기를 통해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때문이었다.
“사람이 시간 정해놓고 죽는 게 아니잖아요. 죽음이란 누구나에게 다가오지만 순서도 없고 예고도 없어요. 그러니 24시간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오래 이 일을 해서 그런지 아직도 사람들이 저를 많이 찾네요.”
하긴 그렇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세상 뜨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그들의 마지막 길을 위해 누군가는 또 바삐 움직여야 한다. 만남 약속을 두 번이나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게 이해가 되었다.
- 들어오는 입구에 보니 간판이 한글, 영어, 한자, 베트남어 등 4개국어로 되어 있던데요.
“애틀랜타가 다민족 사회잖아요. 우리 장의사도 이용자가 한인이 40%, 베트남계가 40%, 나머지 중국계와 히스패닉 등이 20% 정도 됩니다.”
“미국 장례는 망자가 주인공입니다. 장례식도 고인을 애도하고 살아생전 모습을 함께 추억하는 쪽으로 진행이 되지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망자보다는 후손들의 자기과시 무대처럼 보였습니다. 주인공도 고인이 아닌 살아있는 아들이나 유가족인 경우가 많고요.”
그의 말대로 망자가 주인공이 되는 미국 장례식은 한인들에겐 많이 낯설다. 특히 처음 이민 온 한인들은 고인의 주검을 실제로 보며 마지막으로 추모하는 뷰잉(viewing) 순서에 적잖이 당황한다. 대신 미국 장례식이 편한 점도 많다. 3일장이니 5일장이니 해서 유족들이 밤새우며 상가를 지키지는 않아도 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말로 듣는 것보다 직접 한 번 둘러보시지요.” 그러면서 이국자 대표는 이곳저곳을 시설들을 보여주었다. 제일 먼저 데려간 곳은 사무실 옆 관(棺) 전시장. 영화에서나 보던 화려한 모양의 관들이 수십 개 놓여 있고 관 앞에는 2000불 남짓에서 2만 불 가까이 되는 가격표가 다양하게 붙어있었다.
“비싼 관은 중국인들이 많이 찾습니다. 비싸게 돈 들이면 자손들이 그 이상 돌려받는다는 믿음이 있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화장이 많이 늘면서 중국인도 점점 실속 위주로 바뀌고 있습니다. 한인들은 전부터 그랬고요.”
이어 찾은 곳은 장례식이 진행되는 예배당. 중대형 교회 예배당 정도의 넓은 공간이다.“300명 쯤 수용할 수 있어요. 이런 시설이 둘인데 지금은 거의 활용을 못하고 있어요. 요즘은 사람이 못 모이잖아요. 많아야 몇 십 명 정도 모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1년째 지속되는 코로나 사태는 고인을 기리는 방식까지 크게 바꿔놓았다. 문상은커녕 유가족조차 비대면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온라인 장례식도 늘었고 드라이브 스루 문상이나 야외 주차장 자동차 안에서 장례를 보는 ’드라이브 인‘ 장례식까지 등장했다.
“우린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시안들은 코로나로 돌아가신 분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미국 전체 분위기가 그리니 장례도 간소하게 될 수밖에 없죠.”
끝으로 화장(火葬) 시설을 둘러봤다. 예배당 뒤쪽의 호젓한 공간. 대여섯 평 남짓 될까, 유가족 대기실이 있고 한쪽 유리창 너머로 네모난 방 속에 커다란 소각로가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장방형의 화장 기계(?)는 단출했고 내부는 깔끔했다. 아, 저곳이 사람 몸이 순식간에 한 줌 재로 바뀌는 곳이구나. 깊은 적막 속에 공기마저 처연하게 느껴졌다. 잠시 상념에 젖고 있는데 이국자 대표가 정적을 깨트리며 말을 이었다.
“다른 장의사에서도 많이 이용하지요. 이런 게 두 개 있거든요. 요즘은 미국도 화장이 많이 늘었고요. 원래 미국이 기독교 문화권이라 매장이 많았지만 여기는 80%가 화장입니다.”
- 요즘은 웰다잉(Well-dying)에 대해 부쩍 관심이 늘었습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being)에 대한 관심 못지 않아요. 매일 죽음을 접하는 장례 전문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십니까.
“100세 시대라고 하니까 너도나도 100세까지 산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죽음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물론 수명이 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준비를 해야 합니다. 본인이 원하는 장례 방식이나 장지 등도 미리 생각도 해 보고 유서에 기록해두는 게 필요하죠. 생명보험이나 장례보험도 있어서 자손들에게 부담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두는 것도 좋습니다.”
웰다잉은 어떤 죽음이 더 인간다운 죽음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어떤 죽음이 더 품위있고 존중받는 죽음일까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장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국자 대표의 지적대로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나와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 문제다. 이쯤에서 화제를 바꿨다.
- 봉사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많이 했었죠. 한인회도 오래 했고 평통도 하고 이런저런 협회도 많이 했고요. 지금은 딱 세 개만 합니다. 한국학교와 천사포, 소녀상 관련 봉사죠.”
그는 현재 애틀랜타 한국학교 이사장이다. 2년 임기를 마치고 작년에 연임했다. 작년엔 코로나 와중이지만 새 사무실도 마련했다.“커뮤니티의 명망가들이 함께해 주고 있어 감사하지요. 학생이 400여명, 선생님도 40~50명쯤 됩니다.”
천사포 활동은 10년 넘게 지속해 온 애틀랜타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불우 이웃 돕기 프로그램이다. 매년 각계각층이 10불부터 1000불 이상까지 각계각층이 참여해서 더 뜻이 깊다고 했다.
나머지 하나는 소녀상 돌보기다. “소녀상은 보편적인 인권 문제, 여성 문제 등을 다 함축하고 있잖아요. 의미가 큰 곳이죠. 지금도 가끔씩 찾아가 청소도 하고 그래요”
애틀랜타 소녀상은 캘리포니아 글렌데일과 미시간주 사우스필드에 이은 미국에서 세 번째로 지난 2017년 6월말 브룩헤이븐시 블랙번공원에 세워졌다. 지난 1월 조지아 연방상원 결선에 나서 당선된 존 오소프(민주당) 의원의 어머니도 애틀랜타 소녀상 건립을 적극 후원했던 게 밝혀져 화제가 됐었다.
- 긴 시간 감사합니다. 끝으로 한말씀만 더 하신다면.
“제가 1943년생입니다. 나이가 적진 않지만 아직은 은퇴 생각은 하지 않고 있어요. 일할 수 있을 때 더 해야죠. 여전히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보람 아니겠습니까. 일이 곧 건강비결이기도 하고요.”
☞이국자 대표는
독일 파송 간호사 출신이다. 1969년에 미국에 왔고 1971년부터 애틀랜타에 살고 있다. 1999년부터 22년째 리 장의사(4067 Industrial Park Dr. Norcross, GA 30071)를 운영 중이다.
글·사진=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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