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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소를 찾는 사람들

어느새 입춘이 지났다. 겨울이 언제 끝나려나 혀를 끌끌 차며 달력을 넘겼는데,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올해는 빨리 입춘이 왔다. 절집에선 입춘이 되어야 비로소 본격적인 새해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오늘을 위해 미리 써둔 입춘첩과 삼재풀이가 효험이 있기를 기원하며 아침 일찍 산문을 활짝 열어둔다.

올해는 소띠 해, 신축년(辛丑年)이다. 신(辛)이라는 글자가 오행 중 금(金)을 나타내고, 금은 흰색으로 표현하기에, 신축년을 하얀 소의 해라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소를 참 좋아했다. 그 크고 검은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고, 눈싸움 한판을 벌여도 자주 깜박이지 않는 눈동자가 순하고 우직해 보여 좋았다.

어쨌든 소를 생각하면 우직하고 성실하게 인간의 삶을 도와온 가축으로 인식된다. 오랜 세월 잔인한 인간의 길들임에 참을성 있게 따라주었기에, 유순하며 충직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한가하고 평화로운 농촌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고집 센 사람에겐 황소고집이라 부르고, 힘이 장사인 사람은 황소 같은 사람이라 부르기도 한다.

불교의 나라이자 소의 천국이라 불리는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시해서 도로 한복판에 소가 누워있어도 모두가 피해간다. 암소는 어머니 같은 존재여서 악을 쫓고 행운을 불러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이를 먹어도 암소는 도살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노모를 모시듯 편히 살게 해준다. 사람보다 낫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소를 숭배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피스(Apis)라 불리는 어떤 소는 신전에 모셔져 공물을 받으며 편히 살다가 사후에는 미라로 만들어 매장되었다. 또 영문자 A는 소의 뿔을 형상화한 상형문자에서 시작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고 보니 소에 얽힌 이야기가 참 많다.

불교도 소와 각별한 사연이 많다. 우선 부처님의 성(姓)인 ‘고타마(Gotama)’만 해도 ‘최상의 소’, ‘거룩한 소’라는 의미가 있다. 또 우리 절 근처에 있는 만해 스님의 토굴 이름도 소를 찾는 곳 ‘심우장(尋牛莊)’이다.

특히 불교에서는 소를 깨달음의 상징으로 본다.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을 소 찾는 일에 비유하는 그림이 사찰 벽화로 많이 남아있다. 십우도(十牛圖) 또는 심우도(尋牛圖)라 불리는 벽화가 그것인데, 자신의 본성을 찾아 헤매는 동자이야기를 담고 있다.

선(禪)을 닦는 동자가 손에 고삐와 줄을 들고 본래 성품인 소를 찾기 위해 산중을 헤매다가(①尋牛)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게 된다(②見跡). 멀리서 검은 소를 발견하자(③見牛) 동자는 다가가 거침없이 소를 잡는다(④得牛). 그러나 검은 소가 거칠어 길들여야만 했다(⑤牧牛). 어렵사리 길들인 소를 타고 동자는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온다(⑥騎牛歸家). 이때의 소는 검은색이 아니라 상서로운 흰색이다.

집으로 돌아온 동자는 소가 사라졌음을 깨닫는다(⑦忘牛存人). 이어진 그림에는 소도 동자도 사라진 채 텅 빈 공간만 남아있다(⑧人牛俱忘). 둘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풍경은 변함이 없다. 나무에는 꽃이 피고, 강물은 유유히 흐른다(⑨返本還源). 아, 드디어 동자를 찾았다. 지팡이에 주머니를 단 동자가 세상 한가운데 서있다(⑩入廛垂手).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소를 찾는 사람들이다. 자,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디쯤 서있을까.

봄이 오면 소치고 밭 갈 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입춘이 되니 몸이 꿈틀거린다. ‘입춘대길’이라 커다랗게 대문에 써 붙이고 나니, 시간이라는 강물의 흐름 따라 욕망 덩어리도 함께 떠밀려온 모양이다.

작년 한 해 동안 꼼짝 못 하고 잡혀 있었잖은가. 그러니 올해는 순종적인 소 말고 역동적인 소처럼 살리라. 무슨 일에 대해서든 당차게 맞서고 싶다. 백신이 나왔으니, 이제 다시 희망 한번 가져본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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