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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난장] 원더풀 미나리

영화 ‘미나리’ 잇단 낭보
한국문화 저력 다시 떨쳐

미나리의 놀라운 생명력
새봄에 대한 기대도 커져

할리우드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미나리’에 등장하는 미나리꽝 . 배우 윤여정이 미국 시골 냇가에서 손자와 함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판시네마]

할리우드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미나리’에 등장하는 미나리꽝 . 배우 윤여정이 미국 시골 냇가에서 손자와 함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판시네마]

'미나리는 게릴라 전략으로 번식한다.' 식물사회학자 김종원 계명대 교수의 ‘한국 식물 생태 보감’에 나오는 이 대목이 눈에 쏙 들어왔다. 미나리는 여느 식물처럼 종자로 자손을 남기지만 줄기 마디에서도 뿌리를 내리면서 일가를 키워간다는 것이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또 사람이나 산다는 건 만만치 않다. 일종의 전쟁에 비유된다. 식물의 번식 전략도 전쟁용어를 빌리곤 한다. 김 교수에게 자세한 설명을 청했다. 첫째, 침투 전략이다. 바람과 물, 혹은 다른 생물의 힘을 빌려 자기가 사는 곳과 다른 땅에 씨앗을 퍼뜨린다. 도토리가 대표적이다. 둘째는 인해전술이다. 잔디처럼 전후좌우로 세력을 불려 나간다. 셋째, 게릴라 전략이다. 모체(母體)에 연결돼 개체를 늘려나가되 어미에서 삭둑 잘려나가도 스스로 독립해 살아간다.

침투·게릴라 전략을 다 갖춘, 양수겸장인 미나리는 생존력이 탁월하다. 물(미르)에 사는 나물이라는 어원처럼 적당한 물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잘 자란다. 구정물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탁한 물을 정화하고, 맛난 먹거리도 제공한다. 예부터 우리네 밥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다. 김 교수는 말한다. “미나리에는 한국인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았다. 우리 몸속에는 미나리의 유전자가 담겨 있다.”

서두가 다소 길었다. 영화 ‘미나리’(Minari) 때문이다. 재미동포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연일 즐거운 소식을 전하고 있다. ○○○ 올해의 영화상, ○○○ 감독상, ○○○ 여우조연상 등등, 지금껏 총 60관왕에 올랐다. 지난해 한국영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에 버금갈 정도의 화제다. 올 오스카 수상도 유력하게 예상되고 있다. 특히 배우 윤여정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



‘기생충’과 달리 ‘미나리’는 할리우드 영화다. 톱스타 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영화사가 제작했다. 반면 대사 대부분이 한국말이고, 윤여정·한예리·스티븐 연 등이 출연해 미국 자본으로 만든 한국영화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영화 제목도 영어 ‘워터 드롭웟’(Water dropwort), 혹은 ‘워터 셀러리’(Water celery)가 아닌 ‘Minari’다. 김치·태권도처럼 미나리도 향후 미국 신어사전에 등재될지 모를 일이다.

영화 ‘미나리’는 식물 미나리를 닮았다. 낯설고 물선 이녁 땅에서 뿌리를 내리려는 한인 가족의 고투가 웃음과 눈물의 쌍곡선으로 펼쳐진다. 1980년대 미국 남부 아칸소주의 한적한 시골에 건너간 젊은 부부를 중심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향한 희망과 좌절이 잔잔한 물결처럼 흐른다. 웅대한 서사나 화려한 액션이 없는, 그저 그런 소소한 드라마 안에 고향을 등진 이민자들, 소위 디아스포라의 떠도는 나날을 옮겼다.

무엇보다 아칸소주라는 공간이 눈에 띈다. 새 꿈을 찾아 한국을 떠나고, 힘들게 정착한 캘리포니아를 다시 떠나 결국 인적 드문 아칸소주 초지(草地)까지 찾아온 이들 한인 가족은 어쩌면 단지 한국 교민만이 아닌 지금도 세계 곳곳에 산재한 이민자, 나아가 난민들의 초상일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해 초 ‘기생충’의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 말해 유명해진 ‘1인치 자막 장벽’을 넘어 미국 영화인의 숱한 지지를 끌어낸 건 이런 보편적 이야기 덕분일 것이다.

영화에서 미나리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부모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보려 한국에서 날아온 외할머니(윤여정)가 가져온 미나리 씨앗이 작품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잡초처럼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부유하든 가난하든 누구나 뽑아 먹을 수 있고, 또 약초로 쓰이는 미나리는 말 그대로 신통방통 ‘원더풀 미나리’다. ‘기생충’의 채끝살 짜파구리가 빈부차를 드러냈다면 다음달 국내 개봉할 이 영화 속의 미나리는 지역·언어·문화·세대 차이를 메워주는 상징물로 등장한다. 단순한 주변문화를 넘어 할리우드라는 미국 주류문화의 정중앙까지 파고든 한국문화의 저력이 새삼 놀랍다.

미나리는 해독 작용이 뛰어나다. 생태탕·대구탕 등 주당들의 해장음식에 빠지지 않는다. 영화에서도 미나리는 속전속결주의·성공지상주의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로 읽을 수 있다. “천천히 가자”는 윤여정의 대사가 각별한 여운을 남긴다. 어제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이었다. 요즘에야 사시사철 맛보지만 미나리는 역시 봄철이 최고다. 유달리 울적했던 올겨울을 날려버리는 미나리의 알큰한 봄 내음을 기다려본다.


박정호 / 한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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