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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원더풀 미나리, 미나리 원더풀

미나리는 매우 영리한 영화다.
이렇다 할 특수 효과가 들어간 장면도 없다. 심지어 배경 음악조차 없는 장면이 허다하다.
하지만, 버릴 장면 또한 하나도 없다. 일부러 힘을 다 뺀 장면들은 그 때문에 더 현실적이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씬이 없다고 해서 영화가 밋밋한 것은 절대 아니다. 화려함을 배제한 절제된 화면 속에 구도와 소품을 통한 은유가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표정이나 대사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치나 손짓, 시선의 방향 등 사소한 모든 것들이 그대로 하나의 암시가 된다.
이런 사소한 것들을 눈치챌 수 있는 관객은 2시간 동안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감독이 세심하게 빚어 숨겨 놓은 구슬을 모두 하나로 꿰어 영화가 끝난 후 보석 같은 여운을 간직할 수 있다.
헐리우드식 영화에 길들여져 영화를 보고 난 후 스케일이 큰 장면이나 액션 씬 등을 기억하며 만족해왔던 것에 비하면 신선한 충격이다. 장면 장면이 배경으로 남아 대사를 더 도드라지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장면의 세심함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대사는 함축적 의미를 가진 채 스토리 라인을 이끈다.

‘원더풀 미나리, 미나리 원더풀’은 생업에 바쁜 부모들을 대신해 손주들을 돌봐주러 한국에서 온 외할머니의 대사다.
영어를 못하는 할머니의 브로큰 잉글리쉬로 흘려 넘길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미나리가 훌륭하다는 뜻은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손색없이 전달된다.
미나리는 잡초처럼 어디서나 막 자란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뽑아 먹을 수 있다. 김치에도 넣고, 국에도 넣고, 찌개에도 넣고, 아플 땐 약초도 된다.
미나리는 한인 특유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 그리고 선한 영향력을 피력하기에 적절한 대사다. 문법과 상관없이 소통의 기본은 공감이라는 것 또한 상기시켜준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성장해 가는 한인 이민 가정의 이야기라는 서술은 영화의 겉모습만 논하는 말이다.

1980년대에 캘리포니아에서 아칸소로 ‘한국 채소 농장’을 꿈꾸며 이주한 한인 가정의 고난기라는 액면 뒤에는 세대 차이, 도시와 시골로 대변되는 빈부의 격차, 가정에서 남녀의 역할에 대한 선입견과 가장의 책임에 대한 부담감, 가족 부양이라는 목적을 위해 택하는 정당하지 못한 수단, 사회적/집단적 이기심, 종교의 본질과 왜곡된 형태로 남겨진 사회 활동으로서의 종교, 주술적 행위 등 묵직하지만 날카로운 지적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교차한다.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인간사의 고단함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미나리는 이민 생존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찰에 더 가깝다.

영화가 시작할 때, 이사오게된 트레일러 하우스를 보면서 아내가 반사적으로 내뱉은 ‘여긴 대체 어디야?’라는 탄식은 갈등과 실수를 반복하는 가운데 ‘지쳐서 더 견딜 수 없다’는 절망으로까지 치닫는다.
그리고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그들을 구원하는 것은 성공의 열쇠라고 여겨 무엇보다 애지중지하던 수확 작물을 깔끔하게 잃어버린 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깨닫게 된 가족의 소중함이다.

남편과 아내, 누나와 동생, 외할머니로 구성된 다섯 식구는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를 요란하게 어필하거나 호들갑스럽게 과장하지 않고 담담한 대사와 표정 연기로 풀어내며 상호보완을 통해 성장해 나간다. 심장 질환을 가진 아들의 자연적 치유 과정과 순수한 의식의 흐름이 억지스럽지 않은 ‘회복’을 제시한다.
저예산 독립영화인 미나리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국제적으로 주목받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영어 대화보다 한국어 대화가 많다는 이유로 골든그로브 ‘해외 영화’부문 후보로 선정된 것에 대한 불만도 일고 있다.

이해할 수 있는 기대와 반응이지만, 그런 부수적인 이슈들로 영화의 진가가 묻혀버린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문화/예술적 창작품이 영향력을 갖는 이유는 결국 ‘인간성’에 대한 고민이 투영되는 동시에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기계 또는 동식물과 다른 이유,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이유, 인간다운 삶에 대한 정이삭 감독 고유의 외침이 시상식이나 상업적 편의에 가려지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 대로 많은 대중의 가슴에 뿌리내릴 수 있길 바란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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