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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대표가 만난 사람] <3> 사진동호회 ‘아사동’ 회원 폴 황씨

4가지 없는 동호회 씨 뿌리고 가꿨다
〈四無〉

이름·나이·실력·장비 안따져
사진 하나로 평등 세상 구현

출범 15년…1000여명 활동
'사람 냄새' 사진에 담는다

폴 황씨(동호회 닉네임 ‘지춘’)는 근원적인 삶의 문제들을 고민하며 가능한 한 사람냄새를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한다. 이 사진도 그래서 나왔다. 교회 의자가 창밖의 무덤을 가기 위해 기다리는 자리인 듯 보여서 제목을 ‘대기석’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사진 지춘]

폴 황씨(동호회 닉네임 ‘지춘’)는 근원적인 삶의 문제들을 고민하며 가능한 한 사람냄새를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한다. 이 사진도 그래서 나왔다. 교회 의자가 창밖의 무덤을 가기 위해 기다리는 자리인 듯 보여서 제목을 ‘대기석’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사진 지춘]

‘아사동’ 설립자 폴 황(왼쪽)씨가 회원인 본사 전형미(동호회 닉네임 ‘레일라’) 차장과 함께 아사동을 소개하고 있다. 레일라님은 올해 1월 1일자 본지 신년호 1면에 게재된 일출 사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아사동’ 설립자 폴 황(왼쪽)씨가 회원인 본사 전형미(동호회 닉네임 ‘레일라’) 차장과 함께 아사동을 소개하고 있다. 레일라님은 올해 1월 1일자 본지 신년호 1면에 게재된 일출 사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찍을 수 있고 조금 더 깊이 파고들면 작가도 될 수 있다. 물론 기술 진보의 덕이 크긴 하다. 무겁고 어렵고 복잡한 고성능 카메라 대신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로도 얼마든지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 사진 찍기도 마찬가지다. 좀 더 남다르게, 좀 더 전문적으로, 나아가 가능한 한 예술적으로 찍고 싶어 한다. 그러자면 공부가 필수다. 전문가의 조언도 듣고 이론도 익혀야 한다. 함께 출사도 나가고 때론 전시회도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 모인 곳이 사진동호회다.

조지아엔 ‘아사동’이라는 사진동호회가 있다. ‘아틀란타 사진 동호회’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으로 인터넷 기반의 동호회다. 사진을 통해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의 삶의 모습을 나누고 각 지역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설립 취지다. 슬로건은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땅의 모습’이다. 2006년 9월 출범, 등록 회원은 1000명이 훨씬 넘는다.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하지만 미국 전역은 물론 한국서 가입한 회원도 있다. 회원 숫자만 봐서는 미국에서 회원이 가장 많은 한인 사진동호회일 수도 있겠다.

아사동 웹사이트(asadong.org)를 들어가 봤다. 아마추어가 봐도 멋진 사진들이 첫 화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공지사항이나 자유게시판, 출사, 정보 토론방 등을 일별하면서 무척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진 동호회 불모지였던 애틀랜타에 아사동이 이렇게 자리잡은 데는 동호회 설립을 주도한 폴 황(51)씨의 역할이 컸다.

벼룩시장, 그들만의 세상  
조지아주의 어느 지방 벼룩시장 모습. 천장 높이 걸려있는 남부연합기가 이곳이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에 머물러 있는 곳임을 말해주는 것같다. [사진=지춘]

벼룩시장, 그들만의 세상 조지아주의 어느 지방 벼룩시장 모습. 천장 높이 걸려있는 남부연합기가 이곳이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에 머물러 있는 곳임을 말해주는 것같다. [사진=지춘]

“평소 사진을 좋아해 이민 오자마자 사진 동호회가 있으면 가입해야지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고요. 그렇다면 아예 내가 하나 만들지 뭐, 하고 그냥 시작했어요. 그게 2006년이었으니 벌써 15년 전이네요.”

남남
붉은 옷을 입은 여인과 자전거를 탄 아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두 사람이다.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일까, 남남일까. [사진=지춘]

남남 붉은 옷을 입은 여인과 자전거를 탄 아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두 사람이다.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일까, 남남일까. [사진=지춘]

컴퓨터 관련 일을 하면서 틈틈이 사진 일도 한다는 폴 황씨는 동호회 회원들이 늘어나자 나름대로의 철학으로 동호회를 이끌었다. “저희는 회장이니 총무니 하는 리더 그룹이 없습니다. 그냥 웹사이트 운영하고 관리하는 4명의 스태프만 있을 뿐입니다. 사진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끼리인데 그거면 되는 것 아닌가요.”

황씨의 의지대로 아사동은 4가지가 없는 동호회로 자리잡았다. 첫째, 고수와 하수, 신입과 고참의 구분이 없다. 회원은 모두 평등하다는 말이다. 둘째, 남녀노소, 장비 귀천이 없다. 어떤 종류의 카메라로 찍었건 존중하며 사진을 감상하면 된다. 셋째, 가입조건이 없고 회비도 없다. 누구든지 사진 좋아하는 사람이면 들어와 마음 편히 활동하면 된다. 끝으로 영리 사업이 없다.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니까 만남도 건전하다. 당연히 비즈니스를 염두에 둔 신경전도 없고 헤게모니 다툼도 없다.

이런 4무(無)의 전통에서 생겨난 게 아사동만의 특이한 문화다. 우선 회원끼리는 서로 이름이나 나이를 묻지 않는다. 회원 간에는 반말도 하지 않고 호칭도 온라인상의 닉네임으로 부른다. 그래서 몇 년을 같이 활동을 했어도 서로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폴 황씨는 동호회에선 ‘지춘’으로 통한다. (‘지춘님’을 소개한 사람은 ‘레일라님’이다. 두 사람은 인터뷰 당일 함께 자리 했으면서도 정말 서로의 본명도 나이도 몰랐다.)

회비도 없다는데 동호회가 어떻게 운영이 될까. 서버 확장이나 시스템 관리 등 웹사이트 유지비만 해도 상당할 것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늘 익명의 기부자들이 나타나 필요를 채워주고 있다며 황씨도 신기해했다.

“애틀랜타에서 사진 동호회 활동이 쉽진 않아요. 기막히게 멋진 자연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도시다운 활기찬 일상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보통 사진만 생각한다면 별로 찍을 것이 없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회원들 사진을 보면 정말 ‘쥐어 짠’ 사진이 많아요. 그만큼 열심히 찾고 생각하고 찍는다는 말이죠.”

사진에 대한 회원들의 열정과 관심을 이렇게 에둘러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그 속엔 회원들에 대한 자부심은 그대로 묻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동호회 활동에 관여하지 않는 평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설립자로서 아사동에 대한 여전한 관심과 사랑도 느껴졌다.

“매년 전시회도 개최하고 사진 분야별로 다양한 소그룹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조지아 지역 내에서는 매월 교육이나 출사 프로그램도 정기적으로 열리고요. 물론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는 많이 중단됐지만 상황만 나아지면 언제든 다시 재개될 겁니다.”

그의 말대로 어서 빨리 코로나라는 터널이 끝나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폴 황씨는

1969년생. 초중학교 동창이었던 동갑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컴퓨터와 IT 관련 일, 디자인, 어카운팅 등 다양한 일로 생업을 이어간다. 굳이 안 주겠다는 그를 설득해 겨우 건네받은 명함엔 뜻밖에도 포토그래퍼와 그래픽디자이너 외에 '공인 드론 조종사(Certified drone pilot)'라는 직함도 올라가 있었다.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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