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첫눈 오는 날
“친구의 맘 속엔 회한의
눈이 펑펑 내렸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 눈을 맞으며
낭만을 만끽한 적이 없다.
첫눈은 옛일이 되었다”
어머니는 눈이 오면 집 앞부터 쓸었다. 등굣길 우리가 행여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서였다. 처음 시애틀에 살 때 눈이 온 날 아침, 나는 집앞 식구들이 드나드는 좁은 길을 빗자루로 쓸었다. 이웃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다 이유가 있었다. 점심 때가 되니 눈이 스스로 녹아버렸다. 공연한 일을 한 셈이다. 시애틀의 눈은 하루를 넘기기 힘들다. 눈꽃이 함박 피어있을 때 얼른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한다. 머무를 수 없는 허상이 되기 전에 실상을 잡아두려는 건 사람의 욕심일까.
첫눈에는 사연도 많다. 드라마를 보면 그렇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그날 만나자고 1년 전부터 예약을 해둔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막상 첫눈이 오는 날, 여자는 하염없이 눈을 맞으며 남자를 기다리다 눈물 흘리며 돌아선다.
여기까지는 고전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시시각각 상대방 파악이 되니 그렇게 마냥 기다릴 일도 없거니와 기다려 주는 순정도 없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첫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면 당신은 아직 젊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사춘기 소녀 시절, 친구와 그런 약속을 했었다. 수업 중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교실 창밖을 보며 단짝 친구가 말했다. 우리 이담에 대학 가서 처음 맞는 겨울 첫눈 오는 날, 종로 종각 앞에서 만나자고. 그러나 친구는 대학 입시에 낙방하고 재수도 하지 않고 진학을 포기했다. 자연히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해 첫눈 내린 날, 친구의 맘 속엔 회한의 눈이 펑펑 내렸을지 모른다. 그 뒤로도 나는 첫눈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 눈을 맞으며 낭만을 만끽한 적이 없다. 이제 나의 첫눈은 옛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처음이라는 단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공을 들인다. 첫만남, 첫사랑, 첫키스, 첫날밤, 첫출발, 첫아들, 첫손주…. ‘첫’자가 붙은 말은 설익었지만 그렇게 우리는 흘러간다. 처음에서 마지막으로. 소복이 쌓인 신선한 눈 위에 첫발자국을 찍고 싶은게 사람의 심리다. 첫눈 오는 날, 혼자라는 건 견디기 힘들다.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하고 싶다. “지금 창밖을 보세요. 눈이 오고 있어요.” 마음을 나누고 싶다.
설경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영화가 있다. 러시아의 문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닥터 지바고’이다. 혹독하게 추운 전쟁터에서 도망치던 지바고의 얼굴에 매달린 고드름, 러시아의 겨울 벌판에 끝없이 펼쳐지던 설원, 그 눈밭을 헤치며 달려가는 열차, 눈처럼 덧없고 차가운 라라와 지바고의 사랑. 닥터 지바고 역할을 한 배우 오마 샤리프는 심연의 검은 눈동자로 여성들을 매혹하고, 그의 애인 라라 역을 한 줄리 크리스티는 공허한 푸른 눈동자로 남성들을 유혹했다.
하지만 그 스크린에서 내가 감탄한 눈은 자연의 눈(雪)이었다. 살면서 고달픈 상처는 눈처럼 사라지고 추억만 아련하게 남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 오는 날이면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던 영화 주제곡 ‘라라의 테마’를 기억하시는가. 첫눈 오는 날, 이 음악을 듣는다면 애인이 없어도 좋을 것이다. 창밖에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옛일을 떠올리는 것도 괜찮으리라. 이제는 만나자고 약속할 사람 없어도 그해의 첫눈은 여전히 올 것이다.
신순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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