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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결정적 순간

1월의 끝자락, 바닷바람을 타고 온 새벽공기가 무섭게 차가웠다. 창문 너머로 비치는 광활한 대서양으로 눈부실 정도로 선명한 시뻘건 해가 떠오른다. 주홍빛, 초록빛, 보랏빛으로 빛나는 황홀한 그 순간을 담기 위해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 젊은이가 눈에 뜨인다. 우리네 삶은 결정적인 이런 순간순간들로 이루어진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책을 펴낸 위대한 사진가, 카르티에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이란 삶의 한순간을 예리하게 관통하는 의식과 인식의 교호작용, 사진가와 대상 간의 찰나를 소중히 하며, 그때 카메라는 영감과 인식의 결정체인 정신에 따른 눈의 연장이라 했다.

사진은 보는 것이다. 카메라는 눈의 연장이며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위해서라고 한다. 잘 보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의 눈부터 떠야 하리라.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대성당’은 눈은 멀었지만 잘 볼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미국 장교가 어느 날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 아내의 맹인 친구를 맞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침 TV에는 중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화면이 바뀌고 대성당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파리의 대성당 이곳저곳을 비춰주는데 문득 장교는 맹인이 대성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을지 궁금해한다. “대성당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이 있습니까?”라고 장교는 맹인에게 묻는다. 맹인은 솔직히 자신은 대성당에 대한 감이 없다고 대답한다. 갑자기 대성당에 관해 설명해야 하는 막막함에 사로잡힌 장교는 대성당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맹인을 이해시키기엔 대성당은 너무나도 크고 막연한 건축물이다. 맹인은 펜과 종이를 가지고 와 대성당을 그려보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장교는 맹자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얹고는 대성당을 손과 종이 위의 자국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누구든 눈이 달렸다고 해서 모두가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반면에 눈이 없다고 해서 못 본다는 것 또한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맹인이 가르쳐 주는 ‘보는 법’은 눈을 감는 것이다. 진짜로 눈을 감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을 뚫고 불 속에서 쇠를 단련하듯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눈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어느 인지과학자의 말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바닷가 동네에서 살면서 대서양과 마주하고 있는 보드 워크를 자주 걷는다. 걷다 보면 파도를 거슬러 오르는 커다란 고래가 가끔 나타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고 흥분한다. 고래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는 어느 쪽에 있는지 방향을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동안 고래는 이미 사라진다. 물 위로 높이 솟구쳐오르는 등이 시커먼 그 거대한 고래를 보지 못하다니 그 답답함이라니!

이 세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무언인가를 제대로 보는 일일 것이다. 제대로 본다는 것은 마치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것과 같이 놀라운 일이다. 그동안 정작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던 나는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고,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고 공연한 불평만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마치 눈먼 사람이 어느 날 시력을 되찾아 처음 세상을 바라보는듯한 생생한 느낌이 들 수 있는 그런 눈부신 날이 남은 내 생애에 찾아올 수 있을까? 결정적인 그 순간을 상상해 본다.


이춘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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