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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내리다가 언젠가 일본 친구가 보내준 얄상한 꽃무늬의 일본 천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손에 들고 잠시 주춤였다. 작년에 별거한 도쿄에 사는 70대 중반인 지인 부부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오랜 세월 사귀는 동안 나는 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속병이 되어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협화음을 완벽하게 감췄다. 2년 전 그들의 집에 며칠 머물 적에 조금 변화를 느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감정적으로 별거하고 살아도 노후에 무슨 별일 있으랴 했다. 하지만 연말 인사를 나누다가 알게 된 그들의 신체적 별거 소식은 우리 부부에게 충격을 줬다. 몸도 마음도 허약한 노후에 자립한다는 주제가 그들로 인해서 내 의식에 무거운 추가 됐다.

어떤 아름다움이나 열정도 시간이라는 적을 이기지 못한다. 도쿄로 통근하는 열차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결혼하고 아들딸 낳아 화목하게 살았다. 남자가 소니 회사의 주재원으로 두바이와 런던 뉴욕을 거쳐 몽고메리에 살았을 적에 우리는 그들과 인연을 맺었다. 25년 전의 일이다. 우리와 나이나 취향이 비슷하고 영어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어서 쉽게 어울렸다. 남자들은 골프로 여자들은 쇼핑으로 주말은 바빴고 마음이 잘 맞는 몇 지인들과 함께 집집마다 돌아가며 디너 클럽으로 모여서 즐겁게 지냈다. 그렇게 자주 만나며 서로의 성격을 파악했고 중년의 여유로 마음을 열고 서로의 치부도 나누어서 정이 많이 들었다.

문제는 그들이 귀국하면서 일어났다. 20년 이상을 해외에 살면서 동등한 권리를 누려온 여자는 더는 고분고분한 전형적인 일본 여인이 아니어서 남자에게 묶여 살 마음이 없었고, 해외에서는 자상하고 아내를 존중하던 남자가 일본에 정착하자 전통적인 가부장제로 돌아섰다. 심지어 그는 며느리가 손자를 낳지 않고 손녀들만 줄줄이 낳는다고 화를 낸 바람에 아내만 아니라 아들 며느리와도 멀어졌다. 그렇게 전시대 남성의 본성을 고집하니 주위 사람들과 마찰했다. 그 부부가 본국으로 완전히 귀국한 후에도 몇 년에 한 번씩 얼굴을 보며 우정을 다졌는데 그때마다 나도 그의 변한 의식에 놀라며 그와 함께 사는 여자의 대단한 인내심에 손뼉을 쳤다.

하지만 나이 들었으니 그들도 우리처럼 적당히 타협하며 의지하고 사는 줄 알았다. 그 상식적인 관념은 나의 착오였다. 한번 벌어진 거리는 시간과 함께 더욱 깊은 골을 팠다. 사람의 마음에 성숙하고 끈적한 사랑은 진실로 어떤 것인가. 환경과 조건의 변화에 구애 없이 상대가 그저 좋아서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일이 힘들고 사람에게 애착을 가지는 일도 어렵다. 무엇이든 영원한 것이 없음이 슬프다.

특히 노후에는 살아온 세월보다 훨씬 짧은 앞으로의 시간에 중요한 것과 두려운 것이 같다. 그러니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을 떨쳐내고 주위 이목을 겁내지 않고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진 그들은 용감한 노인들이다. 우리 부부는 절대로 못 하는 일을 그들은 했다. 혼자 서기를 한 두 사람을 생각하며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렸다.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반세기 전에 시작된 그들의 스토리를 생각하며, 그리고 나도 새로운 세계로의 탈출을 꿈꿨던 사건들을 떠올리며 단어 하나하나를 입안에서 천천히 읊었다. 그들의 단호한 결정이 어쩌면 죽음으로 끝나는 영원한 이별보다는 차라리 좋았다. 동시에 나도 그들의 결정에 동참하고 있는 사실에 놀랐다.

어수선한 마음을 다스리느라 동네를 한 바퀴 걷고 돌아오다가 옆집 남자를 만났다. 예전 같으면 서로 마주 보고 근황을 나누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이제는 적당한 거리에서 큰 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나눈다. 그의 가족 모두가 코로나 테스트에서 양성판정을 받고 집안에서 격리 중이라는 소식을 알려줘서 깜짝 놀랐다. 바이러스가 내 가까이 다가왔다. 어떤 경로로 누가 먼저 걸려온 지 모르지만, 결과는 온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딱한 소식을 남편에게 전하니 남편은 당장 옆집에 전화해서 우리가 도와줄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웃사촌이 이런 상황에 처하니 별거한 일본 지인들은 태평양 멀리로 떠나갔다.



영 그레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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